19일 오전 일본 국회와 정부 기관이 몰려 있어 도쿄(東京)의 정치 1번지로 통하는 ‘나가타(永田) 정’의 길목에 자리 잡은 호텔 루포루고지마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보좌관 없이 홀로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로비에 들어섰다. 선글라스 때문에 특유의 하얀 긴 눈썹이 보이지 않아 자칫 못 알아볼 뻔했다. 호텔 커피숍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시간 대부분 그는 밀담을 나누는 듯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리고 상체를 바짝 앞으로 끌어당긴 채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에 답변했다. 8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는 또박또박했고 힘이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를 알아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고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 일본 국민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정정해 보인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오전 6시부터 1시간 동안 체조하고 걷는다. 또 뭐든 잘 먹는다. 어지간한 거리는 걷고 조금 멀면 자전거 타고 다니려 한다. 그 외에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은 없다. 취침 시간은 오후 11시쯤이다.”
―8월 15일 전몰자 추도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아시아에 대한 반성과 부전(不戰) 맹세를 하지 않았다.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견해를 드러내겠다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전쟁 희생자에 대해 무엇보다 부전 맹세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 (아베 총리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본인에게 엄중하게 따져 묻고 싶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해 아베 담화를 내고 싶어 한다.
“그의 본심은 역시 전후 체제에서의 탈피다. 그 스스로도 여러 차례 얘기했다. 이는 지금의 헌법 체제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점령군이 준 헌법 대신 자기 손으로 헌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본심이라고 생각한다.”
―재임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시켰으나 해결로 이어지진 못했다.
“나는 고노 담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일본이 뭔가 속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총리 재임 중 위안부 할머니도 만났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기금을 만들었다. 기금을 만든 것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배상 문제는 일단 정리가 됐다는 게 당시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논의를 거쳐 국민 모금을 해 이를 속죄금으로 위안부 할머니에게 전해드리기로 했다. 전쟁을 모르는 어린 세대에는 모금활동을 통해 과거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또 하나는 정부가 배상은 못하지만 보험이나 의료에 필요한 돈은 내기로 했다. 아울러 위안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총리의 사죄편지를 동봉했다. 하지만 한국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반발해 진전이 없었다.”
―해결책은 없나.
“우선 고노 담화를 긍정해야 한다. 일본에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말하는 것을 100% 들어주기는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게 아니다. 양국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이야기를 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때 A급 전범에 대한 도쿄재판의 처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총리나 각료가 참배하는 것은 당시 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도 추진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전쟁을 부정해 온 일본이 전쟁을 긍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사태로 연결된다.”
―요즘 아베 총리의 행보를 이해하기 힘들다.
“나도 모르겠다. 아베 총리는 깊이 반성하고 대국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또 언동을 조심해야 한다. 나도 걱정하고 있다. 주위에서도 ‘괜찮을까’ 하고 많이 걱정한다. 요즘은 미국도 아베 총리의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아베 총리에게 조언을 하면 어떤가.
“어쩔 방도가 없다. (아베 총리는) 듣는 귀를 갖고 있지 않다. 자신감이 가득 차 있어서 그렇다. 그만큼 국민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욕이 넘친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국민이 한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중국을 다녀온 직후인 올 2월 초 아베 총리를 직접 만나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간접적으로 자숙을 촉구했으나 아베 총리는 4월에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게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허탈해했다.
―일본 사회 전반의 우경화 경향도 강해진 것 같다.
“북핵 문제와 중-일 갈등이 불거지면서 일본도 역시 군대를 갖고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전쟁을 모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전후 일본에서 평화헌법의 의미를 냉정히 생각하면 그 길(군대 보유)을 가서는 안 된다. 평화헌법이 있어 일본은 지금까지 오랜 기간 전쟁을 몰랐고 오늘날의 평화, 경제발전이 있었다. 2005년 제주도에서 평화포럼이 열릴 때 기자들의 질문이 헌법 개정에 집중됐다. 나는 ‘전후 평화스럽게 살아온 일본 국민이 헌법 개정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헌법 개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점차 (그 발언에)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그만큼 일본 국민이 우경화됐다는 말인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역시 군대가 없으면 방위가 위태롭다’는 생각을 점차 하는 것 같다. 불안해진 것이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
“일한 관계를 나쁘게 할 발언과 행동은 역시 안 해야 한다. 일한은 원래 좋은 관계였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고 있고 한국인 역시 일본에 대해 그렇게 느낀다. 나는 오이타(大分) 현에 사는데 (유명 온천지역인) 벳푸(別府)에는 한국 여행객이 매우 많다. 이웃 국가이지 않나. 일본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그런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할 말은….
“대통령의 (광복절) 인사말을 신문에서 봤는데 이해심 있는 발언이었다. 일본도 이에 화답해 언동에 주의하면서 교류가 가능한 길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내 나이가 90을 바라보는 나이다. 기회를 봐 전전(戰前)의 여러 것에 대해 국민에게 말을 걸어 이해시키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내용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국가정책)을 잘못하여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통절(痛切)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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