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데이터 교수 “정부개조 없는 혁신, 말에 GPS 다는 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국가대혁신 ‘골든타임’]<1> 대한민국 百年大計세우자
―미래학 석학 짐 데이터의 개혁 전략

《 “제대로 된 미래 전략 수립과 예측을 위해서는 정부 조직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미래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짐 데이터 미국 하와이대 교수(81)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미래전략 수립과 예측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효과적인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정부 조직의 체질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의 물결’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와 함께 세계미래협회를 만들어 미래학을 개척한 데이터 교수는 전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수십 차례 한국을 방문한 지한파이기도 하다. 데이터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달 초 e메일로 세 차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진행됐다. 이하는 일문일답. 》

―국가적 차원의 미래 예측이 왜 중요한가.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차원의 미래 예측의 필요성이 생겼다. 특히 20세기 중반 들어 통치자들이 현재 발생하는 사안을 놓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미래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졌다. 국가 차원의 미래 예측은 이런 이유로 시작됐다.”

―기술적 차원에서만 미래 예측을 하면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의 미래 예측은 필요한가.

“기술 차원의 예측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술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결과들을 미리 인지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현 시점의 많은 문제는 우리가 이런 점을 무시하고 오로지 기술적, 경제적 결과물에만 집중한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서 사회문화적 관점의 미래 예측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확히 예측 못할 바에는 아예 미래 예측을 안 하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다. 혼란만 야기하고 돈 낭비 아니냐는 것이다.

“질문을 받는 이 시점에 내가 머무는 하와이에는 두 개의 대형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 하와이의 어느 곳을 강타할지 아무도 모르는 매우 불분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허리케인의 방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우리가 그냥 손놓고 아무 대비도 안 하는 게 타당한 것인가. 미래 예측이 필요 없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피해가 없는데 왜 허리케인을 미리 걱정하느냐는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

―미래 전략과 관련해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국가는 어디라고 보나.

“어느 국가도 완벽한 모델이 될 수는 없지만 한국은 핀란드와 싱가포르의 미래 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핀란드를 추천한다. 핀란드는 40여 년 전부터 고등 교육과 정부 기능에 미래 연구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지금까지 발전시켜 왔다. 이 때문에 핀란드에선 일반인이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나 공무원들에게 미래 전략이나 관련 연구를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게 대단히 자연스럽다.”

―국가 대혁신에 나선 박근혜 정부에 미래 전략 수립과 관련해 어떤 조언을 하겠는가.

“아직 현대 정부 조직은 구조적으로나 개념적으로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경제, 교육, 심지어 가정 내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정부 조직은 변화가 미미하다. 그런 상태의 정부 조직을 그대로 두고 미래 전략 수립이나 예측 기능을 정부에 맡기는 것은 마치 말이나 유모차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제대로 된 미래 전략 수립과 예측을 위해서는 현 정부 조직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대혁신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한물간 지금의 정부 조직을 그대로 두고 개조에 나서기보다는 거버넌스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한 뒤 개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줄 수 있는 미래 예측 관련 키워드가 있다면….

“하와이에는 ‘Iuma’라는 말이 있다. ‘가장 먼저’라는 뜻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미래 환경을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미래 키워드는 ‘Futures’다. 단일한 개념의 미래가 아니라, 미래가 갖고 있는 다원성 개방성 필연성 등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것이다.”(‘Futures’는 데이터 미래학의 핵심 개념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복수의 미래’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미래학의 관점에서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한국을 포함해 다른 국가들이 처해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지난 200년간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도 보장한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그만큼 세상은 아주 달라졌고 다양한 기회와 도전에 대한 응전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밖에 없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지만, 역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 짐 데이터 교수는

앨빈 토플러와 함께 세계 미래학계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며, 미래학 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6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 미국 최초로 미래학 강의를 개설했다. 이후 세계미래학연맹(WFSF) 사무총장과 의장을 지내며 전 세계의 미래학 연구를 이끌어왔다. 지금까지 미국, 싱가포르, 한국 등 세계 각국 정부에 미래지향적 정책에 대해 조언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9년에는 당시 북한에 있던 황장엽 씨의 초청으로 김일성대에서 미래학 강연을 하기도 했다. 데이터 교수는 오래전부터 특유의 단발머리를 고수해왔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40여 년 가까이 400cc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젊은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 1954년 미국 플로리다 스테츤대 졸업(고대·중세철학)
△ 1955년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 1959년 아메리칸대 정치학 박사
△ 1960∼66년 일본 릿쿄대 교수
△ 1969년∼ 하와이대 교수
△ 1972년∼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 소장
△ 1977년 앨빈 토플러와 세계미래협회 설립
△ 1983∼93년 세계미래학연맹 사무총장, 의장

<특별취재팀>

▽팀장 하종대 편집국 부국장
▽팀원 문권모(소비자경제부) 성동기(국제부)
이훈구(사진부) 차장, 배극인(도쿄)
전승훈(파리)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우경임 이샘물(사회부) 박창규(소비자경제부)
김수진(뉴스디자인팀) 하승희(편집부) 기자
#미래학#국가대혁신#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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