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대상 60개국 가운데 26위였다. 2011, 2012, 2013년 3년 연속 22위였던 순위가 4계단 하락했다.
지난해에 비해 경제성과(20위), 인프라(19위)는 제자리였지만 정부 효율성(20위→26위)과 기업 효율성(34위→39위)은 각각 6계단과 5계단 하락했다. 법과 제도의 틀이 기업 경쟁력을 촉진하는 정도는 48위, 금융과 은행 규제의 적절성은 55위에 그쳤다. 정부가 기업 관련 법, 제도, 규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 정부 효율성 좀먹는 관피아
정부, 공공기관, 민간이 각각 자율성과 협력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거버넌스(governance·국가 경영)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나 이 3자가 서로 ‘눈감아주기’를 일상화한다면 부패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정부)-선박안전관리공단(공공기관)-한국선급(민간)의 연결고리가 낳은 세월호 참사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는 퇴직한 공무원들이 유관업체에 들어가 민관 유착의 폐해를 낳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정부는 관피아 척결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관피아방지특별위원회’에 따르면 6월 현재 중앙부처 또는 공공기관 퇴직자 1218명이 모두 662개 공직 유관단체나 정부 출자·출연기관 보조단체, 사기업 등에 재취업해 있다.
관피아를 막고자 만든 퇴직 고위공직자의 취업 제한 규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민병두 새정치연합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들어 퇴직 고위공직자가 취업 제한 대상 기업체로 취업하기 위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통과율은 91.5%나 됐다. 열에 아홉은 전관예우를 통해 자신이 몸담았던 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관업체에 합법적으로 취업한다는 얘기다. 공직자윤리법이 영리기업만 관리 대상으로 하고 한국선급이나 해운조합 같은 유관단체는 합법적으로 승인을 받아 쉽게 갈 수 있게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12년 공공기관 286곳 중 약 30%에 이르는 82곳의 기관장이 주무 부처 출신이었다. 이향수 건국대 교수(행정학)는 “국민은 공직사회 등 정부 개혁의 주체가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불신부터 갖는다”며 “관피아 척결 같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가나 국민이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행정부와의 원격소통이 낳는 비효율성
“보고 대상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게 관건이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술래잡기’다. 국장과 과장이 모두 서울에 있으면 찾기 어렵다.” “부총리 등은 영상(映像)보고를 선호하지만 국장이나 과장 일부가 굳이 꼭 ‘간부를 봬야 한다’며 서울로 간다.” “간부들의 잦은 서울 출장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보고를 하다 보니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17일 세종시 기획재정부에서 벌어진 ‘업무 효율화 토론회’에서는 일선 공무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고위 간부들도 고통을 호소했다. 부처 실·국장급은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가 곤란하고, 잦은 출장으로 인해 실무진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업무를 협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이란 투입량이 아니라 산출량인데 세종시대는 투입 시간은 늘고 산출 결과는 줄어드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중앙부처가 서울과 세종시로 이원화됨에 따른 비효율성도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대 정책지식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공무원 인식조사에 따르면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 소속 공무원의 84%가 세종시로 온 뒤 행정 효율성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응답했다. ○ “공무원을 춤추게 하라”
정부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비난하기는 쉽다. 불합리한 정부 개혁으로 공무원을 압박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객 만족을 위해서는 공무원들을 만족시키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초반 미국 민주당을 깨운 책 ‘정부 혁신의 길’의 저자 데이비드 오즈번과 테드 개블러는 정부의 비효율성과 무능은 공무원 때문이 아니라 공무원을 일하게 하는 시스템의 오작동 때문이라고 했다. 조직의 생산성은 집단의 팀워크와 협동, 그리고 감독자의 관심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직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민적 관심과 성원, 그리고 대통령의 신뢰는 공무원도 춤추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환경이 조성되면 공무원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올 것을 두려워해 현상 유지만을 꾀하는 ‘변양호 신드롬’도 사라질 것이라고 김 교수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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