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를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 간 경제적 격차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산업이 이탈하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에서 자치는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
지역내총생산(GRDP·해당 지역이 생산한 부가가치)을 보면 2012년도 16개 시도의 GRDP는 1377조 원이었다. 이 중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율이 48.2%로 절반에 육박한다. 각종 인프라와 인재가 집중되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시도별 GRDP 규모를 보면 서울(313조4790억 원) 경기(288조1470억 원) 경남(95조6350억 원) 순이며 서울은 충북(43조6280억 원)의 7배가 넘는다.
지역 간 경제적 격차가 이렇게 커진 건 1차 산업과 2차 산업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지역들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전국 시군구를 대상으로 △인구가 현저히 감소한 지역 △총 사업체 수 감소 등 산업 이탈이 발생된 지역 △노후주택 증가 등 주거환경이 악화되는 지역 가운데 1개 항목에 해당하는 지역은 쇠퇴징후 지역, 2개 이상에 해당하는 지역은 쇠퇴 진행 지역으로 나눴다. 그 결과 전국 230개 시군구 가운데 38개(16.5%)가 쇠퇴 징후 지역으로 조사됐고 128개(55.7%) 지역이 쇠퇴가 이미 진행됐거나 심화된 지역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의 직접적 타격을 받는 농산어촌 지역이나 3차 산업을 유치하지 못한 지방 대도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쇠퇴하는 도시들은 인구 감소 및 고령화로 재정악화가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 놓여 있다. 지방자치가 흔들리는 데는 무리한 선심성 공약 같은 지자체 행정 실패 문제도 있지만 인구는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택시손님 언제 오려나” 최근 주민 수가 급격히 줄어든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이곳 택시기사들이 읍 중심지인 신태인역 앞에서조차 손님을 태우지 못해 천막
아래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신태인읍의 현재 인구는 6600명으로 1960년대 2만6000여 명의 4분의 1 수준이다.
정읍=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문가들은 한국 지방도시도 일본 유바리(夕張) 시처럼 ‘파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유바리 시는 기간산업인 석탄산업이 쇠락하자 이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위험성이 높다. 강원 태백시의 오투리조트나 전남 영암군 F1 경기장처럼 인구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관광산업에 치중하고 있는 지역들이 이미 빚더미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간시설을 유치하거나 관광산업으로 지역 경제를 지탱하려는 정책은 오히려 지역 경제가 자생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막는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지방대 육성,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정부가 ‘균형 발전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적 격차는 오히려 심화됐다. 결국 지역 기업과 주민이 스스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나가야 지역 경제가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 고창군은 2003년 깨끗한 자연 환경을 내세워 매일유업을 유치했다. 임야도 완만하고 바닷바람이 무덥지 않아 소를 키우기 적당한 지역이었다. 매일유업은 공장을 짓고 고창군은 유기농 사료 값과 축사 개조 비용을 지원했다. 매일유업 유기농우유의 지난해 연매출은 1550억 원이다. 매일유업이 상하면에 내는 지방세는 1년에 1억 원이 넘는다. 이처럼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내 자원을 개발해 자생적 성장 모델을 만드는 것만이 앞으로 지역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해법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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