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 씨(24)는 4월경 자전거를 타다 자동차와 충돌해 손가락이 절단됐다. 그러나 보험사가 손해보상금을 터무니없이 적게 주겠다고 했다. A 씨는 소송을 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변호사 선임 비용과 소송 방법 등의 법률지식은 물론이고 법조계 네트워크가 전혀 없어 자칫 ‘호갱’(‘호구 고객’이라는 뜻의 은어)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먼저 전화 상담을 받았지만 상담 내용이 불성실했고, “직접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을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달 11, 12일 변호사 선임을 망설이던 A 씨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10곳의 변호사 사무실을 직접 찾아 상담을 받았다.
○ 변호사 사무실 10곳 ‘부르는 게 값’
A 씨는 몇 군데 변호사 사무실을 돌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담만 커졌다. 사무실마다 대중없이 제시하는 착수금에, 소송 진행 과정에서 추가되는 성공보수 때문이었다. 10곳의 변호사 사무소가 제시하는 수임료(착수금+성공보수)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우린 간호사도 근무한다. 무조건 영구장애 나온다. 인지대와 송달료도 먼저 다 내주겠다”며 전문성을 강조한 A법무법인은 착수금 없이 성공보수 10%만 요구했다. 인맥을 강조하는 B법무법인은 “우리가 ○○병원 잘 안다. 100% 이길 수 있다. 지금이 소송할 적기다”라며 착수금 220만 원에 성공보수 15%를 요구했다.
C법무법인은 수임료를 묻자 “서초 부근은 보통 착수금이 300만∼500만 원이고 성공보수는 10∼30%다”고만 대답할 뿐 정확한 수임료를 알려주지 않았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착수금 500만 원을 부르는 곳도 있었다. 싼 곳을 선택하자니 변호를 대충 할 것 같아 걱정됐고, 비싼 곳을 선택하자니 바가지 수임료 걱정이 앞섰다. A 씨는 “어느 정도 가격 차이가 있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 차이가 너무 커 어디를 선택할지 막막했다”고 털어놓았다. ○ 폐쇄적인 변호사 업계, 윤리장전은 ‘유명무실’
올해 초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업계의 자율적인 윤리규범인 ‘변호사 윤리장전’을 14년 만에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변호사는 의뢰인이 사건 위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의뢰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기초로 사건의 전체적인 예상 진행 과정, 수임료와 비용, 기타 필요한 사항을 설명한다’는 항목이 추가됐다. 법률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A 씨가 상담을 받은 10곳의 변호사 사무실 중에선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상담을 해 준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의뢰인들에게 돈 계산을 해주면 딴 생각을 할 수 있어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리장전 내용을 전하자 “변호사의 쇼핑 단계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영업비밀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며 오히려 면박을 주기도 했다.
보험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대략의 보상액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집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상태를 살피며 소송 절차를 상담해준 경우도 있다. 반면 ‘경험’을 앞세우며 “소송부터 하라”며 의뢰를 종용하는 곳도 있었다. E법무법인은 A 씨의 계속된 질문에 “의뢰할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하시라”며 상담을 중단하기도 했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변호사 시장은 무한 경쟁 체제인 반면 시장의 투명성은 ‘제로’에 가까운 점이 법조계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고객들에게 온전히 피해를 안겨주는 적폐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가 어떤 사건에서 얼마나 받았는지 등 변호사 시장의 정보가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다. 변호사들이 수임료와 비용 등을 영업비밀로 걸어 잠가놓다 보니 정보가 흐르지 않고 적정 시장 가격이 형성될 수가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변호사 사무실 10곳을 돌아다녔지만 어떤 변호사도 신뢰할 수 없었던 A 씨는 끝내 절단된 손가락을 숨긴 채 소송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 규제 풀리면서 시장 가격은 형성 안 돼
수임료 불신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진정이 접수된 사건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진정 사건 중 수임료 관련 분쟁은 156건. 총 접수된 진정 건수(421건)의 37%에 달했다. 2006년 39건에 불과하던 수임료 분쟁은 2008년 이후 평균 137건으로 약 3.5배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예측 불허의 변호사 수임료는 오랜 관행뿐만 아니라 2001년 수임료 규제 완화가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2001년 이전엔 ‘변호사 보수에 관한 규칙’에 따라 각 지방변호사회가 보수기준을 정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라고 지적하자 이 규칙은 폐지됐다. 그 후 변호사 수임료는 더 중구난방이 됐다.
서울변호사회 나승철 회장은 “변호사 수임료 규제가 풀린 뒤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적정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일부 변호사들은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한 의뢰인들의 심정을 이용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궁지에 몰린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조인들이 오히려 이들을 이용해 한몫 잡으려는 행태가 법조계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선 변호사 수임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에서 적절한 보수 규정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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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변호사 수임료(보수)에 대해 법률로 ‘변호사 보수법’이라는 기준을 만들어 소송가액에 따라 의뢰인이 지불해야 하는 돈을 정해 놓았다. 소송가액을 기준으로 최저액인 300유로(약 40만 원)부터 최고액인 50만 유로(약 6억7000만 원)까지 모두 47개 구간으로 쪼개 구간별로 고객이 변호사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을 미리 정해놓은 것이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1만 유로(약 135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변호사가 소송 과정과 1심 변호를 맡았고, 법원이 판결을 선고했다면 법률이 정한 구간별 비용(1만 유로의 경우 약 480유로)에 활동 보수, 소송 진행 기간, 사전 준비 활동 등에 따라 일정 비율을 곱해 계산한 값인 총 1845유로(약 250만 원)를 내면 된다. 이 같은 독일식 수임료 방식의 장점은 ‘수임료의 투명성 보장’에 있다. 의뢰인이 소송가액만 알면 정확한 수임료를 계산할 수 있다.
한국은 2000년 ‘변호사 보수에 관한 규칙’이 폐지되면서 수임료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약정에 의해 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임료를 두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분쟁이 갈수록 심해지자 수임료 규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박인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도 수임료 상한제가 있었는데, 그걸 없애다 보니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과도한 수임료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변호사의 적정 생계유지 차원에서 최소한으로 받아야 하는 금액’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가격이 투명할지는 몰라도 기준 이하의 수임료를 받을 수 없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다”고 주장했다. 2011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은 “사건에 따라 난이도, 소요되는 시간 등이 다른데 그걸 법으로 규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금처럼 자율규제 방식을 유지하되 수임료를 투명하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보완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변호사의 수임료에도 현금영수증 발행을 의무화하는 등 수임료를 투명하게 신고토록 하고, 고객들이 어떤 사건에서 얼마를 받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대안들도 눈길을 끈다. 한 법무법인은 의뢰인이 맡기고자 하는 사건 정보를 입력하면 비용이 계산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변호사 시장의 정보를 축적해 법률 서비스 견적을 비교해주고 적절한 변호사를 매칭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신지현 인턴기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3학년 전현우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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