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세대, 지역 간 사회·경제적 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도 풀지 못하는 난제(難題)다. 이에 선진국들은 정부가 적극 돈을 풀거나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을 유도해 가계의 소득을 높여 중산층을 복원하고, 세밀한 교육 및 복지 정책을 통해 ‘극단의 격차’를 줄여 나가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가계 소득 증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기업이 쌓아둔 자금을 가계로 흐르도록 유도해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교육, 복지 정책이 좀 더 세밀하게 설계돼야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세계 각국, 중산층 늘리기 집중
가계 소득 증대와 중산층 복원은 주요 선진국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경제정책이다. 미국과 일본은 정부가 적극 돈을 푸는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중산층 복원을 꾀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빈곤층의 소득 증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년 연방 최저임금을 7.25달러(시급)에서 10.10달러로 올리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영국도 10% 인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 역시 연방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2015년부터 8.5유로(약 1만2000원)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근 가계 소득을 직접 겨냥하는 △사내유보금 과세(기업소득환류세제) △임금 인상액 10%(대기업은 5%) 세액공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시 임금 지원 등의 정책을 내놨다.
최저임금 인상률 역시 지금보다 단계적으로 더 높여 나갈 방침이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올해(5210원)보다 7.1% 인상된 5580원으로 결정돼 박근혜 정부 들어 2년 연속 7%대 인상률을 기록했다. 2.75∼6.1%였던 이명박 정부 때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인상률을 더 높여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 중산층 기준 불명확
정부가 중산층 복원을 위해 ‘다걸기(올인)’하고 있지만 중산층 기준을 소득만으로 산정하고 있어 기준을 좀 더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근로소득보다 재산소득의 비중이 크고,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소득 중심의) 중산층 산정이 현실과 동떨어질 때가 있고 그마저도 정책, 사안별로 엇갈릴 때가 많다.
통계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중위소득의 50∼150%)을 적용해 중산층을 산정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중산층 비율은 69.7%(연간 총급여 1900만∼5700만 원)로 정부 목표인 70%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는 소득 기준만을 놓고 중산층을 산정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통계적 오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센서스국은 중위소득의 50∼200%를 중산층으로 집계하지만 △주택 소유 여부 △자녀의 대학 교육 △의료보험 △퇴직연금 △가족휴가 여부 등도 기준으로 삼는다. ○ 교육 복지 통해 ‘사다리’ 복원돼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중산층을 복원하는 방향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교육과 복지라는 ‘계층 간 사다리’까지 원활히 작동돼야 중산층이 복원되고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여 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계층 간 교육 격차 역시 되레 커지고 있다. 전북대 교육학과 반상진 교수팀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소득계층별 자녀의 대학진학 격차 분석’에 따르면 월 400만 원을 초과하는 최상위 소득 집단 가정의 대학 진학률은 82.6%였지만, 100만 원 이하의 최하위 계층 가정은 58.3%에 불과했다. 10개 유명 대학으로 한정하면 최상위 계층은 28.4%였지만 최하위 계층은 1.6%까지 떨어졌다.
복지제도 역시 기초생활보장 같은 최소한도로 필요한 정책은 보편적으로 펼쳐야 하지만 낭비를 줄이는 방식의 ‘선별적 복지’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달 20만 원씩 주는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되면서 정부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됐지만 이런 보편적 복지 정책이 내수를 진작하고 가계 소비를 늘리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경제규모 세계 10위 ‘성장 한국’의 그늘… 양극화 속도 亞서 5번째로 빨라 ▼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6·25전쟁을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계층 간 사회·경제적 격차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양극화의 수준을 나타내는 각종 통계에서도 한국의 양극화는 주요 선진국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상위 1%(2012년 기준)의 연 소득은 3억1370만 원으로 중위소득자(전체 근로소득자 소득 순위 중 정중앙에 위치한 소득자·연 1660만 원)의 19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종합소득 최상위 100명의 평균금액은 2007년 165억 원에서 2012년 238억8000만 원으로 44.8%나 증가했다. 차상위 900명의 소득 증가율(24.4%)과 상위 10만 명의 증가율(34.9%)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한국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4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빈곤차이(빈곤갭)’ 비율은 39%로 스페인(42%)과 멕시코(41%)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였다. 빈곤갭이란 빈곤 가구의 소득이 빈곤선(최소 생활이 가능한 소득 수준)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표현한 수치로 빈곤선 이하의 사람들을 빈곤선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의 39%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빈곤갭을 메워줄 수 있는 국가의 사회복지 공공지출 수준은 GDP의 9.3%로 OECD 32개국 멕시코(7.4%)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OECD 평균치인 21.8%의 절반도 안 되고 프랑스(32.5%)나 덴마크(30.8%)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양극화의 속도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면서도 국가가 빈곤갭을 줄여줄 여력은 부족한 것이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전통적 척도인 지니계수 역시 0.31로 OECD 평균치와 같지만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국세청의 소득세 정산 자료에 근거해 다시 지니계수를 산출한 결과 0.371로 치솟아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 5위로 나타났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간 아시아권 28개국의 지니계수를 측정한 결과 한국은 중국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빠르게 빈부격차가 진행된 나라로 조사됐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기업의 투자증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1992년부터 경제성장률이 하락했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소득분배율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일자리가 양적 질적으로 모두 악화된 것인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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