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제조업이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올해 2분기(4∼6월)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4.5%와 13.3% 감소하자 이런 분석이 쏟아졌다. 스마트폰 분야가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 돌풍으로 성장세가 꺾였다면 자동차는 엔화 약세를 앞세운 일본 차의 공세와 프리미엄 브랜드인 독일 차 사이에서 넛크래커 신세가 되고 있다. 조선과 석유화학 등 한국 경제의 캐시카우(수익 창출원) 역할을 해온 다른 제조업 분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경제의 경이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제조업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딜로이트컨설팅의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2010년 3위에서 지난해 5위로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은 선진국들이 제조업이 ‘경제의 뿌리’이자 양질의 일자리 원천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제조업 경쟁력 키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술이 범용화돼 값싼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는 데다 미국발(發) 셰일가스 혁명으로 선진국의 제조원가가 급속히 떨어지면서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 제조업 혁신과 융합, 부품소재 경쟁력 확보 필요
정부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불씨를 살리기 위해 최근 ‘제조업 3.0’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공업 중심의 수입 대체형 전략이 ‘제조업 1.0’이었다면 조립장치산업 위주의 추격형 전략이 ‘제조업 2.0’이다. 이를 넘어 정보기술(IT)을 통한 기존 제조업의 혁신과 융합이 ‘제조업 3.0’이라는 것이다.
가령 원료에 센서를 달고 생산 기계에 무선인식칩(RFID)을 붙이는 방식으로 생산시설의 모든 요소가 서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이 구축되면 최적의 생산 공정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의 제조업 3.0 전략에 대해 산업계는 일단 방향은 옳다고 보고 있다. 국내 수출 대기업의 한 임원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스마트화된 공장으로 소비자 취향에 따른 ‘다품종 대량생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재와 부품, 장비 등 중간재산업 육성도 절박한 과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2011년 3월 실시한 부품소재 기업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8만4761개 기업 중 종업원 수가 300명 이상인 기업은 481개로 전체의 0.6%에 불과했다. 반면에 50명 미만인 기업은 7만9000여 개로 전체의 90%를 넘는다.
대통령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유병규 자문위원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부품소재 기업을 만들려면 부품소재 기업 간의 인수합병(M&A)으로 대형화를 유도해 장기간 연구개발(R&D)을 통한 소재 및 핵심 부품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새로운 산업 지도’로 일자리 창출
생산성 향상은 자칫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IT와 로봇 등을 통해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면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생산량이 늘어도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생산성 향상의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 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야 한다. 가령 신발생산 공장에서 혁신이 이뤄지면 생산성은 향상되지만 일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신발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포함된 칩을 넣어 신발 주인이 얼마나 걸었는지, 어떤 곳을 방문하는지 등을 체크하면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만들어진다. 이근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이 융합 산업 분야를 성공시키려면 정부의 규제 철폐와 동시에 고급 R&D 인력의 지속적인 배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광 의료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성장축이다. 정부도 최근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교육,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대 분야의 규제를 풀고 진입장벽을 낮춰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비슷한 대책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업계 반발과 이해집단 간의 갈등, 국회의 비협조에 막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왔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정부가 단순히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 민원 해결 차원의 규제를 푸는 것을 넘어 서비스업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면서 산업을 육성하는 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글로벌’ 전략으로 시장 키워야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강해지려면 시장이 커야 한다. 정부도 일찍이 이런 점을 간파하고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핵심 목표로 삼는 이른바 ‘본(Born) 글로벌’ 창업을 유도해왔다.
하지만 중소기업청이 최근 발표한 ‘창업기업 실태’ 조사를 보면 ‘본 글로벌’ 창업 지원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창업한 지 7년 이하인 창업기업 164만여 개 중 외국에 수출을 하거나 현지에 진출한 비중은 1.5%에 불과했다. 전체 중소기업 가운데 수출을 하는 중소기업 비중은 2.7%로 영국(11.0%), 독일(10.9%)에 비해 현저히 낮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국내 창업자들은 언어와 문화 등의 이유로 해외 진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창업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장벽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공인 어학시험을 도입하고 이 시험을 통과한 어학 인재들을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관리하면서 창업기업들과 연계해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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