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 협약이 국제사회에서 실효성을 얻으면서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하려고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뿌리다 적발된 기업과 소속 직원은 해외와 국내 양쪽에서 곤경에 처하게 됐다.
오만에서 외국 공기업 임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은 국내 한 종합상사 전직 임원 유모 씨는 올해 2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만약 한국 직원이 외국서 뇌물을 건넨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복역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검찰은 현행법상 또 한번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외국 공무원에게 금품을 뿌린 직원과 법인을 처벌하는 ‘국제상거래에서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국제상거래 뇌물방지법·1999년 2월 시행)’을 우선 검토하게 된다. 이는 외국 형사 판결의 기판력(확정 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이 국내에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김모 씨가 1983년 국내로 밀수품을 들여오려다 일본에서 적발돼 확정 판결까지 받은 사건에서 김 씨에게 “동일한 행위로 일본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더라도 이런 외국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는 기판력이 없다. 그러므로 일사부재리(이미 판결을 내린 사건은 다시 심리 및 재판하지 않는다)의 원칙이 적용될 리 없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다만 같은 범죄로 외국에서 형이 집행됐다면 한국 법원이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해줄 수는 있다.
기업도 곤경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을 때 적용되는 형법상 뇌물죄에는 기업에 대한 양벌 규정이 없지만, 국제상거래 뇌물방지법에는 법인도 처벌하는 양벌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의 책임으로 끝나지 않고 법인도 함께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검찰이 법전에서 잠자고 있던 국제상거래 뇌물방지법을 처음 적용해 기소한 사례는 2011년 5월 인천지검에서 있었다. 검찰은 중국 국영회사인 둥팡항공의 한국지사장(중국인)에게 금품을 건넨 물류업체 대표에게 국제상거래 뇌물방지법을 적용했다.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던 법이 처음으로 적용되면서 국내 기업 법무팀과 법무법인이 관심을 보였다.
정부는 외국 공무원에게 정당한 업무 수행을 촉진할 목적으로 이른바 ‘급행료’라 불리는 소액의 금전이나 이익을 주는 경우를 처벌하지 않는 예외조항을 삭제한 국제상거래 뇌물방지법을 이달 15일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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