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1>부패없는 대한민국, 지금 나부터
(下) 反부패가 성장동력
“부패는 ‘공공의 적’ 1호(public enemy No.1)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한 인터뷰에서 “부패한 공직자나 기업인이 자기 주머니로 착복하는 1달러는 의료 지원이 필요한 임산부로부터 훔치는 돈”이라며 부패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국제기구뿐만 아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부패지수가 높은 중국, 인도부터 반부패 선진국인 유럽연합(EU) 싱가포르까지 예외가 없다. 2003년 유엔의 반부패협약 제정으로 부패 문제에 있어 국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협약의 실효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부패가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 중국, 반부패에 눈을 뜨다
우선 한국보다 반부패인식지수가 낮은 중국이 달라졌다. 시진핑(習近平) 체제는 반부패 체제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주석의 공산당 총서기 취임 한 달 뒤인 2012년 12월 리춘청(李春城) 쓰촨(四川) 성 당 부서기가 낙마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성부급(省部級·장관급) 이상 고위직 55명이 부패 혐의로 물러났다. 또 18만 명의 당원이 비리 혐의로 처분을 받았다.
시 주석의 강력한 지원 아래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 서기는 올해 7월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조사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전·현직 상무위원은 처벌받지 않는다(刑不入常)’는 개혁개방 이후의 묵계가 처음 깨진 것이다. 상무위원은 공산당 최고 지도부다. 시 주석이나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상무위원 7명 중 한 명이다.
기율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이자 최측근인 링지화(令計劃) 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다. 이미 링 부장의 형과 동생을 잡아들였다. 그가 낙마하면 저우 전 서기 이후 최대 정치 스캔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대규모 ‘호랑이(고위급 부패 관료) 사냥’으로 반부패 사정이 정권 초기 일회성 정치 이벤트가 아니고 성역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파리(하위직 부패 관료) 사냥’을 병행하고 해외로 도망친 뤄관(裸官·외국에 재산과 가족을 빼돌린 공무원)까지 조사해 직급과 지역을 불문한 전방위 개혁을 단행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시 주석은 이미 지난해 1월 기율위 전체회의에서 “호랑이와 파리를 모두 때려잡아야 한다” “권력을 제도의 틀에 가둬야 한다”며 부패 척결 의지를 강조했다. 제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호가 반부패를 최고의 정책 목표로 둔 이유는 집권 능력과 통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에 이어 세계인구 2위인 인도 역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만연한 부패에 저항하는 인도인들이 거리행진을 한 뒤 인도 입법부가 지난해 부패공직자의 신속한 처벌과 수뢰 행위를 감시하는 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 반부패 선진국도 지속적인 제도 개선
회원국 상당수가 매년 부패인식지수 순위 톱10을 휩쓸고 있을 만큼 반부패 선진국인 EU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EU 집행위원회는 2011년 “EU 국내총생산(GDP)의 1%인 연간 1200억 유로가 부패 비용으로 사용된다”며 이른바 반부패정책 패키지를 제안했다. 지난해에는 회원국의 부패척결 노력을 조사·평가하는 ‘반부패리포트’를 발간해 부패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나라의 이름을 공개키로 했다. “해당 국가의 이름을 밝히고 부끄럽게 만들면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미국에서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될 정도로 미국 정계에 영향력이 컸던 밥 맥도널 전 주지사 부부의 재판이 세간의 화제다. 주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이권 청탁의 대가로 15만 달러가 넘는 뇌물을 제공받았다는 게 올해 1월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맥도널 전 주지사는 법정에서 “아내가 받은 금품은 대가를 바란 뇌물이 아니라 공여자가 오래전부터 내 아내에게 반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아내를 불륜의 상대방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자신의 뇌물 혐의를 피하기 위해 아내의 정조까지 팔고 나선 건 검찰이 기소한 14개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300년에 가까운 징역형이 내려질 수도 있는 사법 시스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비판했다.
아시아 국가로는 유럽 수준으로 부패인식지수가 낮아 각종 조사 때마다 기업 하기 좋은 아시아 국가 1, 2위로 꼽히는 싱가포르와 홍콩도 부패척결에 나서고 있다. 두 나라의 공공부문 부패는 어느 정도 사라졌음에도 민간부문 범죄 줄이기에 집중하고 있다. 담당 인력을 늘리고, 온라인 조달 및 아웃소싱 시스템을 도입해 비리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올해 초 일본은 만능세포인 ‘자극야기 다능성 획득(STAP) 세포’ 논문 조작으로 떠들썩했다. 8월 초 문제의 논문 집필 지도를 맡았던 사사이 요시키(笹井芳樹)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연구센터 부소장이 자살하기까지 했다. 문부과학성은 8월 말 대학과 연구기관에 가칭 ‘연구공정추진실’을 내년부터 설치하기로 결정하는 등 재발방지책을 마련했다. 추진실은 대학의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연구 부정을 막는 사령탑 역할을 한다.
일본은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재발 방지책을 만들며 같은 부정부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다 보니 과거 악명 높았던 정(자민당)-관(공직사회)-재(대기업)의 이른바 ‘철의 트라이앵글’ 관련 대형 비리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시민들의 행정감시도 상시화돼 있다. ‘전국시민 옴부즈맨 연결회의’는 지방자치단체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의 정무활동비 지출 보고서, 영수증 등을 인터넷에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인 ‘부패와의 전쟁’은 무역전쟁처럼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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