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화점에서 지난해까지 패션 잡화 상품기획자로 근무했던 장모 씨(28)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30대 매장 관리자들(협력업체 소속)에게 “지금 뭐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이들은 대부분 규정에 어긋난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대응한 사람들이었다.
장 씨는 ‘돈을 돌려주거나 해서 조용히 처리하라’고 엄포를 놓는 일을 일상처럼 반복했다.
“매장에서 고성이 오가면 매출이 떨어지고, 본사 차원에서 점포가 낮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미안했지만 솔직히 그런 불만을 하나씩 해결하는 게 더 복잡하고 귀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보다 권력관계에서 ‘열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갑질’을 해본 이들은 얼마나 될까. 동아일보는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함께 20∼50대 직장인 724명에게 ‘갑질의 경험’에 대해 물어봤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369명(51.0%)은 ‘지위·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갑질이라고 인정하느냐’고 묻자 10명 중 6명(225명·61.0%)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갑질’이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도 39.0%(144명)나 됐다.
또 이들은 ‘갑질’의 이유를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서 찾았다. ‘상대를 불편하게 한 이유(복수 응답)’에 대해 물었을 때, 절반이 넘는 191명(51.8%)이 ‘상대가 요령을 피우거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이를 질책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119명(32.2%)은 ‘회사의 이익, 높은 사람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이야기했지만 상대방이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이라는 응답도 18.7%(69명)나 됐다.
결국 상대방에 대한 낮은 신뢰수준 또는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질’의 주요 원인이란 점, 그리고 ‘갑질’이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 박힌 결과 자신의 행동이 ‘갑질’이란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수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