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5> 성장동력 되살리자
(下) 혁신 없는 공장에 미래 없다
‘0.0011%.’
독일 바이에른 주 암베르크 시에 있는 지멘스의 ‘시스템 컨트롤러’ 생산공장의 올해 10월 불량률이다. 100만 개를 생산하면 11개 정도 불량품이 나온다는 얘기다. 지난해 10월∼올해 9월 0.00115%에서 0.00005%포인트를 더 낮췄다. 현재 불량률은 20년 전의 30분의 1 수준이다. 고객사들에 ‘품질 하면 지멘스’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는 수치다. 지멘스는 나아가 최종 불량률 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 ○ ‘자동화=일자리 감소’ 아니다
지난달 5일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왜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마트 팩토리’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완전 자동화된 공장이라면 흔히 생명체라곤 찾을 수 없는 기계들만의 공간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곳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공장 안내를 맡은 슈테판 리첼 매니저는 “지멘스의 목표는 자동화가 아니라 비용과 품질을 고려한 최적화”라며 “연간 생산량이 100만 개 이상은 돼야 완전 자동화가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지멘스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시스템 컨트롤러 ‘시매틱 S7-300’은 이런 조건에 부합해 생산라인이 거의 100% 자동화된 경우다.
총면적 1만 m²의 암베르크 공장은 25년 만에 생산성이 8배나 높아졌다. 75% 이상을 자동화했지만 직원 규모는 1200명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자동화=일자리 감소’라는 등식 때문에 공장 효율화에 함부로 투자하지 못하는 국내 제조업체나 기업 노조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카를하인츠 뷔트너 지멘스 디지털팩토리 사업본부 부사장은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힘을 합쳐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암베르크 공장 내 모든 기계장치들은 통합 운용 소프트웨어(SW)와 연결돼 있다. 기계 이상이나 불량품 생산을 감지하기 위해 1000개의 온라인 체크포인트와 1000개의 스캐너가 설치돼 있다. 불량을 막기 위해 처리되는 데이터가 하루 평균 5000만 건에 이른다. 실시간으로 납땜 작업이 이뤄지는 온도를 체크해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경고를 울리는 식이다. 생산라인에 이상이 발생하면 1초 만에 어느 부위에서 어떤 작업이 잘못됐는지를 명시한 e메일이 담당자에게 전달된다. 담당자는 원격제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돼 재가동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 민간의 혁신이 정책 변화도 이끌어내
지멘스 본사는 바이에른 주 뮌헨에 있지만 디지털팩토리 사업본부는 같은 주 뉘른베르크에 헤드쿼터를 두고 있다. 지멘스는 뉘른베르크 본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4월 발족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플랫폼’을 주도하고 있다.
지멘스 디지털팩토리 사업본부 안톤 후버 사장은 “지멘스는 이미 10년 전부터 산업현장의 디지털화를 추진해 왔다”며 “이는 독일 정부가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추진하게 된 주요한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에서 이뤄져 온 혁신이 결국 정책적 변화까지 이끌어 냈다는 설명이다.
지멘스 디지털팩토리 사업본부에는 8000여 명의 엔지니어 수와 비슷한 7000여 명의 SW 전문 인력이 일하고 있다. SW 인력들은 각 산업현장의 효율을 높이고 원자재, 제품, 생산, 배송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솔루션을 만들어낸다. 하드웨어(HW)와 SW의 융합을 통해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후버 사장은 “지멘스는 매년 전체 이익의 20%를 SW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며 “2007년 미국 UGS를 35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 가장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UGS가 개발한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시스템은 상품 설계를 위한 아이디어 단계부터 생산까지의 모든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SW다. 최근 현대자동차 연구개발(R&D) 부문과 동부대우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지멘스의 PLM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후버 사장은 “제조업의 경쟁력은 어떤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 내는지와 함께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한국의 제조업체들도 산업 자동화 부문 등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좀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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