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22일 오전 이른 시간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인 공무원노조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통상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 내빈 등이 축사를 위해 앞자리에 앉곤 하지만 이날은 공무원노조 측 관계자들만으로도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새누리당 관계자 중에는 미리 토론장에 입장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 토론회 열지도 못한 채 30분 만에 파행
이날 한국연금학회는 오전 10시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미 토론회 시작 30분 전부터 공무원노조 측은 “노후 생존 착취하는 새누리당 해체하라” “연금개혁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금학회 측이 마련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강력히 성토했다.
공무원노조 지도부로 보이는 관계자는 연단 앞에서 “우리의 밥그릇만을 챙기기 위해 나온 게 아니다”라며 “공무원노조의 투쟁 목표는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노조원은 “연단을 점거해서 토론회를 무산시키자”고 주장했지만 지도부 측은 “물리적인 충돌은 피해야 한다. 물리력을 행사해 토론회 자체를 무산시키면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다시 오게 돼 있다”는 말로 노조원들을 설득했다.
토론회 시작 시간을 10분 정도 넘긴 후에야 새누리당 이한구 경제혁신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토론자가 뒷문을 통해 단상에 올랐다. 공무원노조 측은 호루라기를 불며 강한 야유를 보내 토론회 진행을 지연시켰다.
한 노조원은 토론회 자료집을 찢어 던지려고 하다 노조 지도부 측으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다. 회의장을 찾은 일부 노조원은 욕설을 섞어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10분 가까이 야유가 이어지자 새누리당 나성린 수석정책위 부의장이 연단에 서서 “공무원 여러분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오늘 개혁안은 새누리당 안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흥분한 노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노조 측은 오히려 강한 반대 구호를 외쳤고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오전 10시 반경 사회자는 토론회 취소를 알렸고 이한구 위원장 등 새누리당 의원들과 토론회 참석자들은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노조 지도부가 연단에 올라 “오늘 토론회는 결국 무산됐다. 동지 여러분 수고하셨다”고 외치자 회의장에 남아있던 노조원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 향후 논의도 불투명해 개혁안 마련 난관 예상
새누리당은 이날 토론회 무산 이후 향후 추가 토론회 일정은 잡지 않았다. 다만, 토론회 무산 이후 비공개 논의 자리에서 공무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책 마련을 안전행정부에 거듭 요청했다. 이에 앞서 18일 당정청(黨政靑)에서도 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공무원의 거센 반발을 고려해 정부에 공무원 인센티브 방안을 요청했고, 이 자리에서 안행부 측은 “성과를 낸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기 진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 올해 10월 최종안을 만들고 내년 상반기까지 개혁안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앞서 1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추진하면 표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개혁) 해야 한다. 공무원과 등을 져야 하지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번 토론회가 무산됨에 따라 10월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겠다는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연금 개혁 주체가 뚜렷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행부 관계자는 “이번 토론회가 무산되면서 여론 수렴 기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무원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 안정을 위해 연금 개혁안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공무원 정년을 늘려주는 논의를 함께 하는 건 맞지 않다”라면서도 “확실한 인센티브 방안을 주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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