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수급자-민간기업 재취업자 연금삭감은 손도 못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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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연금개혁/재정절감 미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연금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재정 적자의 심각성이 예측되고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게 확인됐지만 근본적인 처방을 계속 미뤄 오다 현재에 이르렀다”며 조속한 개혁을 당부했다. 하지만 2일 오랜 산통 끝에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당초 개혁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근본적인 처방은커녕 공무원 표를 의식한 ‘땜질’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5년 안에 다시 ‘연금 개혁’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며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은 다루지 않고 합의를 위한 합의를 했다”고 지적했다.

○ 납부상한액 국민연금보다 307만원 높아


기존에 발표됐던 새누리당·정부 기초제시·김용하안(案)은 고액 연금 수급자를 막기 위해 연금 납부 상한액을 전체 공무원 평균소득(447만 원)의 1.8배(804만 원)에서 1.5배(670만 원)까지 낮추도록 했다. 하지만 최종 여야 합의안에서는 공무원노조가 주장했던 1.6배(715만 원)가 관철됐다. 고액 연금 수급자가 많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특히 기존 1.5배 안을 강력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민연금의 납부 상한액(408만 원)은 공무원연금보다 307만 원이나 낮다.

연금 납부 상한액이 높아질수록 내는 보험료가 높아져 받는 연금액도 높아진다. 2013년 10월 기준으로 공무원연금 수급자 32만 명(유족연금 수급자 제외) 가운데 매달 300만 원 이상 연금을 받는 퇴직 공무원은 21%가 넘었다.

○ 첫 수령 연령 늦추는 방안도 뒷걸음

여야 최종 합의안은 현행 60세(2009년 이전 가입자)인 첫 연금 수령 연령을 단계적으로 연장해 2033년 이후에는 65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원래 새누리당·정부 기초제시·김용하안은 모두 2023년부터 2년에 1세씩 늘어나 2031년에 65세가 되도록 했다. 하지만 최종안은 3년에 1세씩 늘어나도록 설계해 첫 연금 수령 연령이 65세가 되는 시점이 2년 늦춰졌다. 이에 따라 재정 절감 효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황서종 인사혁신처 차장은 “국민연금도 2033년 65세가 되기 때문에 이에 일치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금 전액 삭감되는 고액 연봉 대상자 축소


연금이 전액 삭감되는 대상자도 축소됐다. 앞으로 선출직 공무원과 정부 전액 출자·출연 기관에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 가운데 월평균 소득이 715만 원을 넘으면 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정부 기초제시안은 민간기업에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과 고액 연봉자는 전액 삭감 대상자로 추가했지만 이번 합의안에서는 빠졌다. 공무원연금 수급자 건강보험 가입 현황 자료(2014년 8월 기준)에 따르면 공무원연금 수급자 5명 가운데 1명은 연금 외에 별도로 월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민간기업 재취업자를 제외한 데다 소득 기준이 높아 실제 연금 지급이 정지되는 대상자는 소수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금 일부를 삭감하는 기준은 강화됐다. 근로·사업 소득이 있는 최대 절반을 삭감할 수 있는 기준이 근로자 평균 임금(338만 원)에서 전년 평균 연금액(223만 원)으로 낮아졌다. 부동산 임대 소득도 사업소득으로 새로 포함된다.

○ 고령화에 따른 자동 삭감 빠져


당초 새누리당·정부 기초제시안은 고령화가 진행돼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 자동으로 연금 인상액이 줄어드는 구조로 설계하는 고령화 지수 도입을 제안했다. 공무원연금이 도입된 1960년 평균 연령은 52세였지만 2013년 평균 연령은 82세, 부양률은 33.8%까지 뛰었다. 이에 따라 고령화지수 도입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지만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기존 연금 수급자의 연금을 실질적으로 삭감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연금 수령액에 따라 재정안정화기여금을 2∼4% 부과하려 했지만 결국 연금 수급자의 기득권은 손대지 못 한 셈이다.

○ 연금 수령액 동결 효과도 ‘글쎄’


여야 합의안은 물가가 올라도 5년간 연금액을 동결하기로 했지만 현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재정 감축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0.8%, 올해 1월 0.8%, 올해 2월 0.5% 등으로 석 달 연속 0%대를 기록했다. 오히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연금을 보전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천지윤 인사혁신처 연금복지과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 결과를 토대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5%대일 것으로 가정해서 동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마이너스 물가가 도래하면 별도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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