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일주일 만에 첫 업무를 보는 4일 수석비서관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박 대통령의 발언 수위에 따라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의 명운이 갈릴 수 있기 때문.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비판 여론까지 거센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대응은 살얼음판을 걷는 당청 관계의 ‘중대 변수’였다. 모처럼 시한 내 이루어진 여야 합의 자체가 무력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수용하되 국민연금액 인상 합의에 제동을 걸었다. 분리 대응으로 ‘절충’을 선택한 셈이다. ○ 여야 합의에 ‘투 트랙 대응’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한 근본 이유가 지금 연금 구조로는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하지만 개혁의 폭과 속도가 당초 국민들이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야가 합의해 당초 약속한 연금 개혁 처리 시한을 지킨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의 결론은 ‘아쉽지만 여야 합의안을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우선 여야가 약속한 시한을 지켜 한 합의를 깨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자칫 당청 간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공무원연금 개혁이 무산되면 임기 중 기회가 없다는 절박함에서 ‘미흡한 개혁’이나마 받아들이는 현실적 선택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연금액 인상 합의에는 “국민들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했다. 여야 지도부가 2일 국민연금액 인상에 합의하자 청와대는 “명백한 월권”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의 반대에도 국민연금액 인상 합의를 밀어붙인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판 여론에 박 대통령의 제동까지 맞물려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박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 체제에 조건부 지지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 4대 개혁 동력 살릴 수 있나
청와대는 4·29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하자 “경제 살리고 정치 개혁을 이루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의 첫 단추”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시장 개혁을 시작으로 공공, 교육, 금융 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한 것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 여권은 ‘개혁 성적표’로 평가받겠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에 6개월 넘게 매달린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개혁 동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노동시장 개혁은 공무원연금보다 이해당사자가 훨씬 복잡하다. 이 때문에 노사정 대표들이 석 달간 협상을 벌였지만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2년→4년) △저(低)성과자 해고 요건 명확화 등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지난달 초 결렬됐다.
앞으로 박 대통령은 경제 행보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 일자리 창출의 절박함을 부각시켜 노동시장 개혁의 동력을 직접 살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 개혁도 개혁 동력 확보의 한 축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 개혁의 첫 과제로 ‘사면권 제도 개선’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사면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이뤄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자유롭지 않은 사면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야당과 차별화하는 동시에 박 대통령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정치 개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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