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10일 발표한 기자 브리핑은 200자 원고지 20장 분량이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홍보수석이 정치 현안만을 두고 이렇게 긴 브리핑을 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작심 발언’이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은 협상을 앞둔 새정치민주연합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브리핑 취소를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강행했다는 후문이다.
김 수석이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한 현안은 △공무원연금 개혁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담은 소득세법 처리 △누리과정 예산 확보를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 △경제 활성화 법안 통과 등 4가지다. 각 사안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면서 국민에게 얼마나 피해가 가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놓고 김 수석은 직접 ‘세금 폭탄’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무원연금 개혁이 우선”이라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먼저 이행한 뒤 국민연금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고 거듭 ‘분리 처리’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할 경우 ‘세금 폭탄’은 무려 1702조 원, 연평균 26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율을 상향 조정하면 내년에만 34조5000억 원을 더 거둬야 한다”고 했다. 소득대체율 50%를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든, 아니면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는 대신 세금으로 충당하든 ‘재앙’ 수준에 가깝다는 얘기다.
김 수석은 또 보험료율을 1%포인트만 올리면 소득대체율 50%를 맞출 수 있다는 새정치연합의 주장에 대해 “(그렇게 되면)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가 45세가 되는 2060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돼 그해부터 보험료율을 25.3%까지 올려야 한다”며 “우리의 아들딸들은 세금을 제외하고도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소득의 4분의 1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감성에 호소한 것이다.
김 수석은 “소득이 적어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저소득층과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장기 체납한 분들이 (국민연금) 2000만 가입자 중 500만 명이 넘는다”며 연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김 수석은 이어 “서비스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 35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이런 법안들 대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이 아무런 대안도 없이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성토였다.
5월 임시국회 개회를 앞두고 청와대가 여야 정치권을 정조준하자 새정치연합은 즉각 반발했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통한 여야 합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국민과의 약속을 무참히 깬 것은 다름 아닌 청와대”라며 “(청와대가) 끊임없이 국회에 지침을 내리는 것은 삼권분립 의미를 훼손하는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브리핑에 공식 의견을 내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 회동 당일 청와대가 굳이 야당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선 공무원연금 개혁, 후 국민연금 논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여야 협상이 더욱 꼬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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