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른바 ‘정윤회 문건’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는 가운데 이동통신 위치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건에는 “정윤회 씨와 비선 라인 ‘십상시’가 지난해 10∼12월 서울 강남의 J중식당에서 매월 2차례 만났다”고 적혀 있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모임의 유무, 모임의 참석자 등을 밝혀내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여러 조건이 부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휴대전화 위치정보로 1년 전 일을 확인할 수 있을까?
9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동통신(휴대전화, 태블릿PC 등) 가입자가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인터넷 등을 사용할 경우 인근 기지국 주소가 기록으로 남는다.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은 이통사가 가입자들의 송수신 명세와 당시 위치정보를 무선통화(무선→무선, 무선→유선)와 문자메시지의 경우 12개월, 유선통화(유선→유선, 유선→무선)는 6개월, 인터넷 로그기록은 3개월간 보관토록 규정하고 있다. 통화나 문자메시지 내용 등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따라서 문건에서 거론된 인물들의 통화 명세를 모두 살펴보면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통신 3사 기지국 위치가 모두 다르지만 모임 장소로 지목된 도심 지역은 업체별로 적게는 250m, 평균 500m마다 기지국을 1개씩 두고 있다. 현재 1년이 지나 지난해 10, 11월 기록은 이미 삭제됐고 12월 기록만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해당 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휴대전화를 켜두고 사용하지 않아도 이통사들은 가입자 휴대전화가 어느 기지국 전파를 사용하는지 실시간으로는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보를 저장하지는 않는다. 방통위 관계자는 “통화 명세를 보관하는 것은 범죄 수사 등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과거의 위치정보까지 저장해 놓으면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관련 인물들이 모임을 가지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했어야 현재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한 통신 전문가는 “당시 모임이 있었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중 일부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면 그 기록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는 여러 방법으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통사들은 특정인의 휴대전화와 각 기지국이 주고받는 신호를 통해 이동경로를 알아낼 수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하면 오차 범위를 20∼30m로 줄일 수 있다. 대상자가 건물 안이나 지하로 들어가면 GPS는 무용지물이 되지만 이때는 무선인터넷(와이파이) 접속 여부에 따라 위치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위치추적을 피하는 방법도 있다. 강남역 인근에 있던 A 씨가 휴대전화 전원을 끄지 않고 배터리를 빼버리면 해당 기지국은 A 씨가 계속 인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휴대전화 전원을 끄면 기지국에 ‘전원이 꺼졌다’는 정상 신호가 도달하지만 배터리를 빼면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가 다른 장소로 갔다가 강남역 인근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다시 켜면 되는 것이다. 방대혁 KT 네트워크혁신팀장은 “위치추적을 피하려고 일부러 ‘배터리 빼기’를 사용한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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