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동향’ 문건 등 청와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최경락 경위(45·사망)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나는 문서를 유출한 적이 없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48·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유출한 것 같은데, 나한테 덮어씌우는 것”이라며 박 경정을 문건 유출자로 지목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반면 박 경정은 검찰 조사에서 “내가 정보1분실에 옮겨놓은 상자에서 문건을 꺼내 복사했다는 최 경위가 유출 문제를 알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다양한 증거를 들이밀며 자신을 옥죄는 동시에 동료 경찰관과도 서로 범인이라고 맞서면서 심적인 부담이 커지자 최 경위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사건을 언론에선 권력형 비리와 같은 게이트 수사보다 더 큰 이슈로 다루고 있고, 그 주범으로 지목된 상황이 최 경위에게 큰 압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 경위가 남긴 유서 내용에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받은 압박감이 묻어 있다. 그는 “‘BH(청와대)의 국정 농단(정윤회 동향 문건으로 추정)’은 저와 상관없다. 단지 세계일보 A 기자가 쓴 기사로 인해 제가 이런 힘든 지경에 오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박 경정이 정보1분실로 보낸 상자 안의 문건을 꺼내 최 경위와 함께 복사했다고 진술한 한모 경위(44)에게는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나는 너를 이해한다”면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모종의 회유가 있었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이어 “이제 내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 차원의 문제”라며 “이제라도 우리 회사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고 적었다.
최 경위는 11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 과정에서 “대통령민정비서관실 파견 경찰관이 한 경위에게 ‘자백하면 불입건해준다’고 제의했다고 한다”며 ‘청와대 회유’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자백’을 해놓고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 경위는 법원에서 “청와대로부터 회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청와대 역시 “수사를 의뢰한 뒤 피의자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경위가 이를 유서를 남기면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고, 청와대 회유설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미 최 경위가 세계일보 A 기자에게 여러 건의 문건을 넘긴 정황을 파악해 구속영장 청구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검찰은 4월 ‘비위 청와대 행정관 징계 없는 원대 복귀’라는 기사의 근거가 된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 등 3건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휴대전화 기록을 복원해 물증을 발견했다. 다만 정윤회 동향 문건은 물증은 아니지만 제3자의 진술과 관련된 정황 증거가 여러 개 있어 이 또한 최 경위가 넘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최 경위의 자살이라는 돌발 변수에도 검찰 수사는 빠르게 종착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에선 “(문건 작성과 유출 경로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사건 초기 박 경정이 “청와대 밖으로 문건을 빼돌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검찰은 그동안 휴대전화와 녹취파일 복원, 한 경위의 조사에서 문건 유출 경로를 상당 부분 파악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과 친분이 두터운 박지만 EG 회장을 15일 불러 ‘배후 의혹’까지 조사한 뒤 이르면 22일경 수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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