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문건 유출 수사]
실체 규명할 기회 수차례 놓치고 ‘3인방’ 두둔하다 암투설 키워
與는 靑눈치 보며 무기력한 모습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최경락 경위가 자살하면서 청와대도 난감해하고 있다. ‘권력암투’ 논란만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을 유출자로 지목한 상황에서 이 부분마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청와대 실책’ 논란이 확산될 수 있다.
청와대는 ‘정윤회 동향’ 문건이 유출되자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사건 배후로 추정하고 내부 감찰을 벌였다. 이어 조 전 비서관과 오모 전 행정관 등 청와대 안팎 인사 7, 8명이 문건 작성과 유출에 관여했다는 감찰 결과를 검찰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 전 행정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사건 배후를 조 전 비서관으로 몰아갔다”고 해 오히려 청와대가 역공을 받는 형국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두둔하면서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도 키웠다.
그러나 청와대는 오 전 행정관이 5월 말 조 전 비서관에게서 넘겨받은 문건 사본 100여 쪽을 제출했을 때 유출 문제를 조사하지 않았다. 문건 유출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잡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실책 논란’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14일에도 “진실 규명은 검찰의 몫”(박대출 대변인), “야당은 의혹 부풀리기를 멈춰야 한다”(윤영석 원내대변인)는 수준의 논평만 내놨다. 김무성 대표는 “죄 없는 사람이 누명을 벗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의 조사에서 죄가 있는 사람은 큰 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 발언만 했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는 트위터에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을 ‘찌라시’라고 하고 검찰은 문건 유출에만 혈안이 되다 보니 사람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김형욱 사건과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됐는지 명심하라”고도 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도미(渡美) 후 박정희 정부를 비판했고 1979년 10월 7일 실종됐다. 그해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은 김재규 중정부장이 쏜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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