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내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최경락 경위(45)는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과정에서 대통령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으로부터 동료인 한모 경위(44)가 회유를 당했다는 내용을 주변에 상세히 설명했던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최 경위는 11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 도중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한 경위는 혐의를 인정하는데 최 경위는 왜 혐의를 부인하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최 경위는 비장한 표정으로 예정에 없던 발언을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언 도중 최 경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소리가 새 나갈 것을 우려해 마이크를 끄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최 경위는 “검찰에 체포되기 전날인 8일 오후 6시를 전후해 서울 용산의 모처에서 한 경위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민정수석실 ○○○ 비서관 밑에 있는 파견 경찰이 ‘박관천 경정(48·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2월경 정보1분실에 옮겨 놓은 상자에서 문건을 꺼내 복사했고, 이를 최 경위에게 건네줬다’는 부분을 인정하면 한 달 안에 클리어(기소를 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했다고 한 경위에게 들었다”고 주장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4시 20분경 종료됐다.
최 경위 측에 따르면 두 사람은 8일 저녁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최 경위는 고심 끝에 “내(최 경위)가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자백한 뒤 너(한 경위)는 살아라”라는 취지로 합의를 보고 이를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는 것. 둘을 잘 아는 지인은 “문서 유출과 관련한 기본적 사실관계의 흐름이 두 사람이 결론 내린 구도와 일부 부합하는 면이 있어 입장이 정리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 경위와 최 경위는 9일 새벽 나란히 자택에서 체포됐으며, 이후 한 경위는 검찰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11일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된 한 경위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한 경위에게 “체포되기 전 외부의 압력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한 경위는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한 경위가 ‘혐의를 인정하면 선처한다더니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느냐’고 반발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또 15일 오후 한 방송에서 ‘한 경위가 청와대 측의 회유 사실을 인정했다’고 보도했으나 한 경위의 변호인은 “한 경위에게 확인했더니 그런 내용으로 인터뷰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에 앞서 한 경위의 변호인은 “고인(최 경위)이 남긴 유서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믿기 어렵지만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밝혔다.
한 경위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는 강도 높은 추궁이 이뤄졌다. 검찰 측은 법정에서 열쇠를 꺼내 보이며 한 경위가 특정 캐비닛이나 서랍에 청와대 문건을 숨겨 왔을 가능성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한 경위가 검찰의 추궁이 두려워 최 경위를 설득하기 위해 ‘청와대 측의 선처 약속’ 얘기를 지어냈는데 최 경위가 이를 그대로 믿었다는 시각도 있다.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이 혐의의 경중과 관계없이 선처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믿기 어려운 얘기이고, 실제 검찰은 한 경위에게도 예외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한편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파견 근무 중인 경찰관 3명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모두 한 경위 접촉 의혹을 부인했다. A 경감은 “한 경위를 만난 적이 없고 할 말이 없다”고, B 경정과 C 경감은 “한 경위의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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