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박관천, 미행 오토바이 종류까지 적어 사실인양 꾸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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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파문/미행 보고서 수사]
‘박지만 미행 보고서’ 허위작성 확인
A4용지 3, 4매… 보고-수신자 없어, 작성 의도 - 배후 여부에 수사 초점
조응천 “미행 보고서 만든지 몰라”

검찰은 박관천 경정(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작성한 이른바 ‘박지만 EG 회장 미행 보고서’가 상당 부분 허위로 꾸며져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정윤회 동향’ 문건도 허위로 작성했던 박 경정이 미행 보고서를 작성한 동기를 밝히고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과의 공모 여부를 밝히는 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 檢, 허위 보고서 ‘배후’ 조사

검찰이 박 회장 측으로부터 제출받은 보고서는 A4용지 3, 4장 분량으로 공공기관에서 정식으로 생산하는 문서와 달리 작성자와 보고자 수신자도 명시되지 않은 ‘메모’ 형태의 문건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지난해 11, 12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정윤회 씨의 지시로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시사저널의 3월 보도와 비슷한 내용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정은 수사 초기 “미행과 관련해 내사한 적 없다”고 주장했고, 15일 조사에서는 관련 진술을 거부했지만 17일에는 자신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을 시인했다.

박 회장은 올해 초 측근 전모 씨를 통해 보고서를 전달받은 뒤 미행을 깊이 의심하게 됐다고 한다.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구체적이고 등장인물의 인적사항까지 상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날 보고서에서 지목한 미행자 등을 소환 조사하고 이들의 통화 기록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 내용은 ‘엉터리’에 가까웠다고 한다. 보고서에서 미행설의 출처로 언급된 전직 경찰관 A 씨는 “박 경정을 알고 지낸 사이이긴 하지만 미행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미행한 남성으로 등장하는 B 씨는 “박 회장을 미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박 경정이 탐문 조사를 한 것으로 나오는 2, 3명은 “박 경정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는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했던 박 경정이 어떤 의도로 허위 보고서를 ‘관리 대상’이었던 박 회장에게 전달했는지를 밝히는 수순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검찰에 제출한 기록에 따르면 박 경정은 해당 보고서를 지난해 12월∼올해 1월 청와대 외부에서 작성했고, 공식 라인인 민정수석실에 보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경정이 직속상관이었던 조 전 비서관과 별도의 ‘비선(秘線)’ 라인을 형성하고 보고서의 작성과 전달을 공모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 전 비서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제출해 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한 상태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경정이 미행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아는 바 없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박 경정은 지난해 12월경 경찰청 정보국에 “미행설에 대한 ‘기관 정보’를 청와대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비슷한 내용의 미행설이 여러 정보기관에서 유통되도록 해 신빙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는지 조사하는 한편 보고서 내용이 박 경정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를 검토 중이다.

○ 朴 회장 “남재준 국정원장 모른다”

박 회장 측은 이날 오후 조용호 변호사를 통해 박 회장과 관련된 언론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세계일보 A 기자가 (5월 12일) 유출 문건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를 건네받지는 않았고 문건 유출 사실을 남재준 당시 국가정보원장에게 알린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 자신은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으로부터 청와대 동향을 보고받은 적이 없고, 미행자를 보거나 그의 자술서를 확보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 회장 측은 특히 “박 회장은 남 원장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해 문건 유출 경위 규명을 요청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며 “박 회장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이 16일 박 경정을 체포하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외에 공용서류 은닉 혐의도 적용한 것은 박 경정이 반출한 문건들이 대통령기록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형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서류 등을 은닉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때 ‘서류’는 작성 방식이나 내용에 결함이 있는 것까지 포함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나중에 법원이 박 경정의 문건들을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단순한 업무 참고자료로 판단하더라도 박 경정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신나리 기자
#박관천#정윤회#박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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