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EG 회장과 정윤회 씨의 권력 암투 의혹을 촉발시켰던 ‘박지만 미행설’은 ‘정윤회 문건’ 등 다른 청와대 문건들과 달리 처음부터 박 회장의 요청으로 만들어졌고 박 회장의 지인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밝혀졌다.
박 회장에게 2013년 말 처음 미행설의 ‘뼈대’를 제보한 것은 박 회장의 지인 김모 씨이다. 김 씨는 박 회장의 외당숙이자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장을 지낸 고(故) 송모 씨의 처조카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 전후부터 부쩍 송 씨 측과 가까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정윤회 동향’ 문건에서 “요즘 정 씨를 만나려면 7억 원 정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한 인물로도 지목됐다. 박 회장은 김 씨에게서 “정 씨가 약점을 잡기 위해 미행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측근 전모 씨를 통해 박관천 경정에게 진상 파악을 주문했다.
박 경정은 지난해 1월 미행설에 ‘살’을 붙여 박 회장에게 구두 보고했다. “정 씨의 사주를 받은 경기 남양주시 B커피숍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박 회장을 미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회장은 박 경정의 허위 보고를 그대로 믿고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로 사실 확인까지 요청했다.
미행설은 박 회장이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언급하면서 언론에까지 흘러들어갔다. 지인 이모 씨가 시사저널 기자에게 미행설을 알렸고, 시사저널은 지난해 3월 23일자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미행 낌새를 차린 박 회장이 직접 오토바이 미행자를 붙잡아 ‘정 씨가 배후’라는 자술서를 받아냈다”는 그럴싸한 얘기까지 덧붙여졌다.
미행설이 보도되자 박 회장은 여기저기서 관련 자료를 요청받기 시작했다. 김기춘 실장과 정 씨가 “자료를 보여 달라”며 박 회장에게 요청한 것도 이때다. 박 회장은 박 경정에게 근거 자료를 요구했고, 박 경정은 3월 28일 박 회장 측근 전 씨를 자신의 근무지인 서울 도봉경찰서 정보과장실로 불러 ‘회장님 미행 관련 건(件)’이라는 제목의 4쪽 분량 문건을 작성해 전달했다.
문건에는 “정 씨가 2013년 10월 핵심 보좌관들과의 모임에서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해) 박 회장의 약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박 회장 동향 파악을 지시했다가 성과가 미미하자 직접 나섰다”, “(미행자인) B커피숍 운영자의 아들이 ‘정 씨가 약(마약)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었다.
검찰 수사에서 미행설이 근거 없는 내용으로 밝혀지자 박 경정은 자신의 보고가 허위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문건 작성 동기에 대한 진술은 피했다. 다만 검찰은 문건에 박 회장의 과거 마약 투약 전력을 암시하는 내용과 함께 조 전 비서관에 대한 우호적인 묘사가 대거 포함돼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정 씨에 대한 박 회장의 반감을 키운 뒤 정 씨와 청와대 실세들에 대항하는 인물로 조 전 비서관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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