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위 “내가 복사… 문건 보여주겠다” 통화내용 담긴 USB가 결정적 단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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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수사결과 발표]드러난 문건유출 경로

지난해 12월 3일 검찰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정보분실 한모 경위(45)의 아파트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당시 한 경위는 아파트 입구의 소화전 주변을 맴돌았다. 검찰 수사관이 이를 수상하게 여겨 소화전 내부를 열자 한 경위가 숨겨 놓은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가 나왔다. 이 USB메모리에는 한 경위가 지난해 2월 박관천 경정(49·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문건을 무단 복사해 정보분실 동료인 고 최경락 경위에게 전달한 경위가 상세하게 녹음돼 있었다. 한 개의 USB메모리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청와대 문건 유출 경로를 한꺼번에 푼 실마리가 된 것이다.

검찰의 유출 경로 확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수사 초기 박 경정은 청와대 파견에서 해제돼 경찰로 복귀하게 되면서 반출한 상자에 “문건이 아니라 옷가지 등이 있었다”며 엉뚱한 해명을 했다. 한 경위와 최 경위는 문건 복사 자체를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도 유출 경로에 대해 ‘박 경정 외부 반출, 한 경위 복사’라는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한 경위의 아파트 소화전에서 나온 USB메모리로 미궁에 빠질 뻔했던 유출 경로가 드러났다. 검찰은 한 경위가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진모 차장과 통화하면서 “박 경정의 문건을 복사했다. 문건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 녹음 파일을 찾아냈다. 한 경위는 검찰이 녹음 파일을 내밀자 “(청와대 문건 등을) 복사하면서 문건 내용을 모두 확인하진 못했으나 정윤회 씨의 사진을 봤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정윤회 동향 문건의 유출 경로가 박 경정→한 경위→최 경위 등으로 풀리는 순간이었다.

박 경정은 검찰이 한 경위의 자백을 제시하자 문건 반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정은 자신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2월 12일 ‘정윤회 동향’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문건 15건 등 총 26건의 문서를 출력했다. 사흘 뒤인 15일 정보분실에서 당직 근무 중이던 한 경위가 사무실에 보관돼 있던 박스에서 반출 문건들을 발견했다. 한 경위는 범죄 첩보 등의 내용을 보자 문건 대부분을 복사했고, 20일 정보분실 동료 경찰관인 최 경위에게 복사본을 전달했다.

박 경정은 지난해 4월 2일자 세계일보에 자신이 반출한 문서 중 ‘비리 청와대 행정관 징계 없는 원대 복귀’ 기사가 보도되자 세계일보 A 기자를 만났다. 그는 “정보원을 만나 문건 유출 경위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고, A 기자는 “5월 8일 정보원을 만나기로 했으니 술값을 대신 내 달라”며 박 경정의 요구에 응했다. 정보원은 한 경위로부터 복사한 문건을 전달받은 최 경위였다. 그날 박 경정은 술값 70만 원을 송금하고 A 기자가 최 경위에게서 건네받은 문건(128쪽 분량)의 사본을 전달받았다.

박 경정은 이를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에게 보고했고, 조 전 비서관은 박지만 EG 회장에게 “청와대 내부 문건이 대거 유출됐으니 청와대에 알려 조치를 취하도록 해달라”고 급하게 요청했다. 나흘 뒤인 5월 12일 조 전 비서관의 주선으로 A 기자는 박 회장을 찾아가 문건 사본을 보여주며 설명했으나 후속 조치는 없었다.

검찰은 △5월 8일 최 경위와 A 기자의 동선이 상당히 일치하고 △두 사람이 지난 1년간 약 550회 통화한 사실을 근거로 세계일보에 보도된 청와대 문건은 최 경위가 유출한 것으로 판단했다. 한 경위는 한화그룹 직원에게 청와대 전 행정관 비위 관련 첩보를 구두로 누설한 것으로 조사돼 불구속 기소됐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청와대 문건 유출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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