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직원의 일탈행위에 대해서 (국민들께) 걱정 끼치고 비판 받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대단히 죄송하다”며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소임이 끝나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당장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 실장은 이날 운영위에서 한층 몸을 낮췄다. ‘정윤회 동향’ 문건 파문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청와대는 대국민 사과 없이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을 가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라고만 강변했다. 김 실장도 비난 여론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날 굳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병상에 있는 자신의 아들 이야기까지 꺼냈다. 공식 석상에서 김 실장이 아들 문제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도 자식이 병원에 누워 사경을 헤맨 지 1년이 넘었는데 자주 가보지 못해 인간적으로 매우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보좌할 수 있는가 해서 있지만 제 소임이 끝나면 언제든지 물러날 마음의 자세를 갖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이 재차 “물러날 용의가 없느냐”고 물었지만 김 실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그 대신 김 실장은 “다시는 그런(문건 유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무자세와 기강을 철저하게 바로잡도록 하겠다”며 “결연한 마음으로 심기일전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배전의 노력을 다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김 실장이 이날 국회에서 사과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12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김 실장이 대국민 사과를 함으로써 청와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비선실세 의혹’으로 불거진 정윤회 씨 동향 문건 유출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가 납득할 만한 인적 쇄신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김 실장을 비롯한 ‘문고리 3인방’은 당장 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이 정도 조치로 후폭풍이 쉽게 마무리될지는 의문이다.
이날 김영한 민정수석비서관이 김 실장까지 동의한 국회 출석 요구를 거부하면서 사표를 던진 초유의 ‘항명성’ 사태는 새로운 변수다. 김 실장의 리더십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신년기자회견을 앞둔 박 대통령의 고민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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