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53)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문건 유출자인 박관천 경정(49·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도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교체설 관련 문건(정윤회 문건)을 제외한 나머지 문건 유출 혐의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다만 박 경정은 검찰이 추가 기소한 뇌물수수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7년과 금괴 5개 몰수, 추징금 4340만 원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15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생산된 문건의 복사본과 추가 출력본은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고, 이를 반출했다거나 공무상의 비밀을 누설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57)에게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건넨 행위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경정이 작성해 (내부) 보고에 사용된 종이문서 원본만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고, 박 회장에게 전달된 추가 출력본 또는 복사본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추가 출력본이나 복사본, 기록물 생산과 보고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보고 폐기하거나 유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공공기록물의 사본을 유출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2005년 법무부의 유권해석과 미국 대통령기록물법이 그 판단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선 유출한 17개 문건을 ‘정윤회 문건(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 동향)’과 나머지 16개 문건으로 나눠 판단했다. 17개 문건 모두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지만 ‘정윤회 문건’을 제외한 16개 문건은 “적법한 특별감찰 직무 범위 내에서 작성됐고,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한 것도 법령에 의한 직무수행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정윤회 문건’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 없이 박 경정이 독자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보고 박 경정에게만 유죄를 인정했다. 박 경정은 청와대 파견 근무 종료 후 업무 참고용으로 기록물을 갖고 나온 행위 등에 대해 공용서류 은닉 혐의와 무고 혐의도 받았으나 이 부분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방실침입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한모 경위(45)에 대해서는 “상급자인 정보분실장(박 경정)의 사무실에 침입해 청와대 문건을 복사한 후 제3자에게 누설한 범행이 인정된다”며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선고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조 전 비서관은 무죄 취지의 판단이 내려지자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판결 선고 후 조 전 비서관은 기자들에게 “맹자에 나오는 ‘궁불실의(窮不失義) 달불리도(達不離道)’, 어려움에 처했더라도 의를 잃지 말고, 잘나갈 때도 도를 벗어나지 말라는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재판기간 내내 한 번도 법을 위반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검사 출신인 그는 “검찰이 그냥 (무죄를) 인정하고 항소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다”며 “고난은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복사본이나 추가 출력본은 얼마든지 유출돼도 괜찮다는 논리여서 관련 법률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고, 제3자의 사생활이나 탈세 등 범죄 정보가 포함된 문건 전달까지 정당한 직무상 행위라는 판단에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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