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이 그제 비상대책회의에서 “정당 해산 결정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례가 없다”며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결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강령에 동의하지 않고 “이석기 의원의 언행은 시대착오적”이라는 토를 달긴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고 공식 석상에서 분명히 밝힌 것이다. 문재인 비대위원도 “통진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는 정치적 결사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라고 통진당 해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의 발언에 ‘종북 논란’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어제 우윤근 원내대표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문 위원장도 당론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물러섰다. 그러나 당 대표가 공식회의에서 한 발언을 없었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의 발언은 1956년 서독 헌재가 위헌을 이유로 공산당을 해산한 사례에 비춰볼 때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헌재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서 헌재에 대한 야당의 노골적인 압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도부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의견 표명은 전날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이창복 민화협 상임고문 등 좌파 원로들이 당을 방문해 “통진당 해산에 반대해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11월 결성된 ‘통진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원탁회의’ 멤버들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원탁회의’라는 세력을 만들어 야권을 압박해 왔다. 여야 원내대표 간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파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2012년 19대 총선거 때는 민주통합당과 통진당 간의 야권연대를 성사시켰다. 내란선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통진당이 13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야권연대를 통해서였다.
좌파 원로들의 주의주장이 무엇이든, 두 번이나 집권한 적이 있고 130석의 의석을 가진 제1 야당이 당외 세력에 휘둘려서는 수권정당이 될 자격이 없다. 오늘날 새정치연합이 10%대까지 지지율이 추락할 정도로 초라한 몰골이 된 데는 이들의 훈수 정치에 이끌려 줏대 없이 좌클릭을 거듭한 탓도 크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통진당과 거리 두기를 해왔으나 문 위원장과 차기 대표를 노리는 문재인 비대위원의 이번 발언으로 당의 색깔이 무엇인지 드러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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