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흉기 피습 사건을 계기로 일부 이념 편향적인 시민단체들의 폭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지상주의가 이 같은 끔찍한 테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그동안의 폭력성으로 미뤄 유사 범죄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나오고 있다.
5일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 씨(55)는 경찰에 검거된 뒤 자신의 행동을 ‘테러’라고 표현했다. 김 씨는 “전쟁훈련(키리졸브 훈련)을 중단시키기 위해 나를 희생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김 씨는 자신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다. 전형적인 테러범의 심리”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시민운동가의 과도한 이념성이 곪아 터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민주화 투쟁 세대가 1990년대 대거 시민사회로 흘러들면서 ‘시민성’은 빠지고 ‘이념’만 남았다. 서구 시민단체가 반핵, 환경, 인권에 집중한 반면 우리는 이념 투쟁에만 매몰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30여 년 동안 자칭 통일운동가로 활동했다.
김 씨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경찰은 이적성이 있고 과격한 폭력을 내세우는 국내 급진 종북단체가 총 61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32개가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적극적으로 가담해 활동하는 회원은 1만9000여 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이들의 대외 활동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김 씨와 같은 돌발적 테러는 막기 힘들다. 경찰청 관계자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는 주요 단체가 아니면 정확한 회원 수나 개별 활동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격 폭력성은 친북이나 반미 성향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어버이연합과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농성장 철거를 요구하며 집기를 부수는 등 유족들과 충돌을 빚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양 극단의 폭력성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시대착오적인 ‘종북세력’과 선량한 진보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홍명근 간사는 “시민들의 합리적인 목소리를 지키려면 한쪽으로 치우친 과격한 의견들은 배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이념에 치우쳐서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단체들은 시민단체라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시민사회 영역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 이념 대립을 걸러내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괴물’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중도를 포용할 구심력이 있으면 극단적인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진보와 보수가 대화를 해야 과격 단체들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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