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깊은 상처… 정부의 ‘對北 대화모드’ 위축 불가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7일 03시 00분


[리퍼트 美대사 피습 이후]
‘종북’ 김기종 테러 파장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범인 김기종 씨가 6일 오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경찰은 이날 오전 4시 40분경부터 서울 서대문구의 김 씨 주거지 겸 사무실을 9시간
 가까이 압수수색했다. 홍진환 jean@donga.com·최혁중 기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범인 김기종 씨가 6일 오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경찰은 이날 오전 4시 40분경부터 서울 서대문구의 김 씨 주거지 겸 사무실을 9시간 가까이 압수수색했다. 홍진환 jean@donga.com·최혁중 기자
5일 발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는 한미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에 깊은 상처를 입힌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범인은 “전쟁 훈련 대신 남북대화를 하라”며 칼을 휘둘렀지만 오히려 합리적 대북대화 지지파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대화를 모색 중인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당분간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1998년 9월 ‘통일 염원’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의 협의기구로 출범했다. 현재 참여 단체는 200여 곳. 경제계를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장과 노동계의 한국노총 위원장, 여야 의원 등 보수와 진보가 모두 상임의장(8명)에 포함돼 좌우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2013년 10월 홍사덕 전 의원이 대표상임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민화협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박근혜 대선 후보의 경선캠프 선대위원장을 지낸 ‘친박계’ 홍 대표가 민화협을 이끌면 남북 협력이 정부의 지원 속에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홍 대표는 지난해 3월 “북한에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하자”고 밝히고 곧바로 수십억 원의 모금까지 마쳐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대북지원’을 민화협이 이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테러는 민화협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정체성까지 의심받게 만들었다. 사건 이후 인터넷에는 ‘북한 민화협과 남한 민화협의 행적’이란 제목으로 민화협이 북한과 연계됐다는 글까지 돌고 있다. 북한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은 이름만 같을 뿐 대남 기구인 통일전선부 산하로 남측 민화협과 태생부터 다르다. 통일부 관계자는 6일 “한국 사회에 민화협만큼 좌우를 아우르는 시민단체가 없다”며 “민화협이 제 기능을 잃으면 온건한 남북대화 지지 목소리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움직임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북한이 사건 직후 매체들을 동원해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고 주장한 것도 “대북정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은 5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이어 6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를 “정의의 칼 세례” “미국을 규탄하는 민심의 반영이자 항거의 표시”라고 주장했다. 이는 리비아에서 이집트 콥트교도 대상 테러가 났을 때인 지난달 18일 “우리는 온갖 형태의 테러와 그에 대한 지원을 반대한다”고 밝힌 북한 스스로의 발표도 부정하는 것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테러에 찬동한 북한의 주장은 한국과 미국의 대북 여론 악화로 이어져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계속해서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를 “정당한 행위”로 선전하면 남북대화로 관계 개선을 꾀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마치 ‘한미동맹 대신 북한을 택하자’는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조용하게라도 있으면 남북대화와 협력에 도움이 될 텐데 북한은 상황을 철저히 자기 식으로만 해석하고 이용한다”고 말했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민심의 반영’ 운운하며 사건의 본질을 왜곡, 날조하고 두둔하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한은 비이성적인 선동을 그만두고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스스로 할 바가 무엇인지 숙고해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윤완준 기자
#리퍼트#미국대사#김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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