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사건이 발생하고 4일이 지났지만 미국은 이를 한 번도 ‘테러’라고 부르지 않았다. 국내 언론 대부분이 ‘한미동맹이 테러를 당했다’고 보도한 것과도 대조된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국내법 및 정치적 환경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리 하프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6일(현지 시간) 이번 공격을 ‘테러’라고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이번 사건은 끔찍한 폭력 행위”라면서 “범행 동기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말로 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국무부는 “우리는 ‘분별없는 폭력 행위(senseless acts of violence)’에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이 ‘테러’ 용어에 조심스러운 이유에 대해 전직 청와대 외교안보부서 관계자는 8일 “테러로 규정하면 미국이 그 행위에 대한 보복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어떤 행위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상응조치가 달라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런 태도는 지난해 말 북한이 소니픽처스를 해킹 공격했을 때 미국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백악관까지 나서 해킹을 “북한의 사이버 반달리즘”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대북 제재 행정명령 발동 등 상응조치를 단행했다. 북한 사이트에 대한 접속차단 등 보복 공격도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리코드(re/code)’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소니 해킹을 국가 차원의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사이버 테러 행위자들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소행은 전쟁 행위(act of war)가 아니고 ‘사이버 반달리즘’”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를 전쟁 행위로 규정하면 그에 맞게 상응조치가 달라지고, 다음 단계의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을 덜 자극적으로 표현한 데에는 한국 정부에 대한 배려도 담긴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주도로 수사가 진행 중인데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경호 실패’ 등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프 부대변인은 “리퍼트 대사는 평소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지원받은 풀타임 경호원 1명의 경호를 받았다”며 경호도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한국에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리퍼트 대사 피습 다음 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많은 미 당국자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프 부대변인은 “북한은 지독할 만큼 냉혈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및 종북 좌파의 뿌리 깊은 폭력 의존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미국 민간 전문가들의 경고도 잇따랐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반도담당 선임연구원은 5일 “한국 진보단체 일부는 북한과의 연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남한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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