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를 수사 중인 검찰과 첫 사법 처리 대상으로 거론되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핵심은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부탁을 받고 1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시점과 장소다. 검찰이 일절 함구하는 가운데 홍 지사는 11일 기자회견에서도 검찰을 향해 “돈을 건넸다는 시간과 장소를 특정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조만간 홍 지사를 재판에 넘기면서 돈 받은 날짜와 장소를 특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2011년 6월 초순 또는 6월 중순 국회 의원회관’ 정도로만 표현한다는 얘기다. 검찰은 돈을 줬다는 윤 전 부사장을 통해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밝혀냈지만 홍 지사를 17시간 넘게 조사하면서 특정 시간과 장소를 묻지 않았다. 성 회장이 사망한 상황에서 자칫 홍 지사의 반박에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이 무너지면 더 이상 혐의를 입증해줄 진술자가 없기에 택한 고육책이다.
홍 지사는 검찰이 날짜와 장소를 언급하면 자신의 일정표 등을 근거로 알리바이를 제시해 검찰의 주장을 깨뜨리겠다는 전략이다. 홍 지사는 2012년 5월 15일까지의 일정이 엑셀 형식으로 30분 단위로 상세히 담겨 있는 일정표를 검찰에 제출하지 않고 변호사 사무실에 맡겨두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전달자가 말을 지어내고 있기 때문에 (돈을 줬다는) 일시, 장소를 특정하지 않으면 일정표를 제출하기 어렵다”며 “내가 일정표를 (먼저) 제출했다가 다시 윤 씨가 그 일정표의 빈 일정에 돈을 줬다고 끼워 넣으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뇌물사건을 여럿 수사해본 홍 지사는 일정표를 무죄 판결의 열쇠로 보고 있다.
동아일보가 홍 지사의 2011년 6월 행적을 당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홍 지사는 기존 해명과 달리 6월 한 달간 최소한 6, 7차례 국회 의원회관에 있었다. 당시 홍 지사가 쓰던 국회 의원회관 707호 의원실은 윤 전 부사장이 돈을 건넸다고 지목한 곳이다. 홍 지사는 23일 당 대표 경선 후보로 등록하며 기탁금 1억2000만 원을 내기 전까지는 대부분 국회나 당사 등에서 일정을 치렀다. 지방 일정은 23∼28일이 전부였다. 출마 선언 직후인 20, 21일과 지방 순회를 마친 29, 30일에는 의원회관에서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지방 일정을 제외하면 언제든 의원회관에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었던 셈이다.
당초 홍 지사는 “경선 기간인 2011년 6월엔 지방을 돌아다니느라 국회 의원회관에는 거의 들르지 못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윤 전 부사장이나 성 회장을 만난 건 2011년 11월 한 차례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은 2011년 특정 날짜에 홍 지사가 국회 의원회관에 있었다는 참고인 진술과 사진 등 객관적 입증자료 등을 이미 확보했다. 당시 홍 지사와 함께 움직인 사람도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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