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11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기탁금 1억2000만 원의 출처를 ‘아내의 비자금’이라고 설명하자 법조계에선 이런 반응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폭로를 통해 검찰 수사를 흔들면서도 법적인 책임은 철저히 피할 수 있는 발언만 골라서 했다는 얘기다.
○ ‘국회대책비’가 자금 출처?
홍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건넨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이 포함된 것으로 의심받는 기탁금의 출처를 “국회 원내대표에게 나오는 국회대책비와 변호사 활동 수입 일부를 모아 둔 아내의 비자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 원내대표에게 매달 나오는 국회대책비 4000만∼5000만 원가량을 현금화해 당 정책위원회나 부대표, 야당 등에 나눠줬다”며 “남은 돈을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고 집사람이 일부를 모은 것”이라고 했다. 홍 지사는 “아내가 2004년 8월경 우리은행 전농동 지점에 대여금고를 개설해 돈을 보관해 온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라고 했다. 기탁금 출처가 ‘성완종 비자금’이 아니라 은행원 출신인 아내가 모아 둔 돈이라는 것이다.
얼핏 횡령 혐의를 자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여금고는 인출 명세나 조회 열람 기록이 남지 않는다. 1억2000만 원이 대여금고에 있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국회대책비는 원내대표의 포괄적 처분권이 폭넓게 인정되는 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대책비는 여당 원내대표가 가지는 하나의 특권”이라며 “사실상 지출 내용을 증빙할 필요가 없는 돈”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이 돈을 문제 삼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을 홍 지사가 충분히 계산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공소시효 지난 폭로들
만약 이 돈이 홍 지사 부인의 ‘비자금’이라고 확인될 경우 2011년 당 대표 경선 당시 홍 지사가 재산 신고 대상에서 이 부분을 빠뜨린 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가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공소시효(선거일 후 6개월)가 이미 완성된 지 오래다. 홍 지사가 이후 관보에 재산신고를 허위로 했다고 해도 공직자윤리법상 △경고 △과태료 △징계 △공표 사안에 불과하다.
홍 지사는 “불과 1년에 20억∼30억 원씩 벌던 시대에 변호사를 11년 했다. 그들만큼은 아니라도 평생 먹고살 만한 돈은 벌어 놨다”는 얘기도 했다. 최근 공개한 홍 지사의 재산이 29억4187만 원이라는 점에서 재산 축소 신고 의혹도 살 수 있다.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자폭’ 발언도 많았다. 홍 지사는 “(2004년) 17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 재직 당시 영남지역 중진 의원이 집과 사무실로 찾아와 5억 원을 줄 테니 공천을 달라’고 제의했다”라고 폭로했다. 홍 지사는 “그 자리에서 ‘16대 때는 (공천헌금이) 20억 원을 준 걸로 안다’고 하고 즉시 20억 원을 제안했다”며 “곧바로 공심위에 보고하고 해당 지역구 공천을 즉석에서 했다. (이 사실을) 당시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은 다 안다”고 덧붙였다. 정치자금법 위반(5년)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10년)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얘기다. 그는 이어 “1억 원은 정치권에서는 광역의원 공천 비용조차 안 된다”라는 얘기까지 했다.
홍 지사는 이날도 “경남지사 선거 때 성 회장이 박주원 전 안산시장과 통화를 하면서 마치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통해 도지사 선거 캠프에 ‘큰 것 하나’(1억 원)를 전달할 것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다”며 거듭 윤 전 부사장의 ‘배달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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