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어제 국회 정보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삭제한 51건의 해킹 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복원한 결과 대테러 관련 10건, 국내 실험용 31건, 나머지 10건은 실험 실패 건”이라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까지 거론하며 “진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국내 사찰은 전혀 없었다. 내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야당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자료만 제시하지 않았을 뿐,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다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태도다. 의혹 규명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출하라고 국정원에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은 “자료가 충분히 제출되고, 최소한 5명의 전문가가 참여해서, 로그 파일을 한 달 정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 말을 수용할 경우 그동안 국정원이 수행한 모든 대북, 대테러 첩보 관련 활동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다. 이번 의혹 규명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국가안보라는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겠다는 그의 발상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국정원 해킹 의혹은 국정원이 이달 14일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인정한 것에서 출발해 어제 사용 용도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단계까지 진전됐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놓고 한쪽에선 “아니다”고 해명하고, 다른 쪽에서는 “못 믿겠다”고 다그치는 도돌이표 공방은 변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뭐라고 설명해도 새정치연합은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되어 있는 듯하다. 새정치연합은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차량 번호판 실제 색깔이 CCTV에 찍힌 것과 다르다며 차량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유족이 차량을 폐차한 것마저도 음모론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국정원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킹 사찰을 벌인 양 주장하며 전면 공세로 전환할 태세다. 이대로라면 정쟁만 거듭될 게 분명하다.
차라리 검찰에 의혹 규명을 맡기고 정치권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서도,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도 그나마 나은 해법이다. 검찰은 어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새정치연합의 고발을 공안부에 배당했다. 검찰 수사라면 최대한 많은 자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국가 기밀자료들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물론 검찰의 공정 수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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