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9월호/포커스 | 국정원 도·감청&해킹 전쟁]
국정원 前 고위간부의 ‘국정원 정치공작’ 비판
● 국정원, ‘국가 안보’ 아닌 ‘정권 안보’ 체질
● 잘못 인정하면 대통령 책임으로 번지니…
● 국내 정치정보 수집능력 세계 최고 수준
● 권력자 입맛 맞게 정보 가공한 사례 많아
국가정보원이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소프트웨어 업체 ‘해킹팀’에서 휴대전화 전방위 해킹이 가능한 ‘RCS(Remote Control System)’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카카오톡 해킹 기술에 대한 진전 사항을 해킹팀에 문의한 사실도 밝혀졌다. 국정원은 ‘대북·대테러용’ ‘국내 실험용’이라고 해명했으나 7월 18일 해당 업무를 담당한 임모(45) 과장이 자살하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할 당시 근무한 국정원 차장급 이상 핵심 간부 중 현재까지 자리를 지킨 이는 없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3명의 원장(남재준·이병기·이병호)이 임명되면서 실·국장도 대부분 바뀌었다. 국정원은 ‘차단의 원칙’을 지키면서 일한다. 다른 부서나 동료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훗날 불법 감청 및 해킹 의혹 사건의 불똥이 다른 곳에서 튈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탈북자 유우성 씨 간첩 수사 증거 조작’ 시비가 불거졌을 때 국정원은 “조작이 아니며 우리는 관여한 바 없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나중에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호 현 원장은 올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 개입이 국정원을 망쳤다”면서 “결코 역사적 범죄자가 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은폐가 더 무거운 범죄라는 것을 잘 안다”는 말이 흰소리가 돼서는 안 된다.
국정원 안에 정보·안보·공작 업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부서는 없다. 원장, 기조실장도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니다. 세포가 제각각 구실하는 생물(生物) 비슷한 측면을 지녔다. 휴대전화 불법 감청 및 해킹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전모는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또한 정보기관 속성상 밖에서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정원의 업무 처리 절차, 외부에 대한 대응 방식, 직원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면 ‘정치 개입 댓글 사건’ ‘간첩 수사 증거 조작 사건’ ‘휴대전화 불법 감청 및 해킹 의혹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기 쉽다.
태생적, 체질적 한계
8월 8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에서 고위직(1급)으로 일한 인사와 인터뷰했다. 국정원 인사가 현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돼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구해우 전 기획관(북한 담당)은 국정원 재직 당시 ‘실세’로 통했다. 국정원법은 전·현직 직원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하면 처벌받게 돼 있어 그의 답변 내용 중엔 ‘행간’을 읽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구 전 기획관은 “국정원은 정권안보기구로 출범했다는 태생적 · 체질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면서 “국가안보보다 정권 안보를 중시하는 체질 때문에 정치권력에 줄 대는 행태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보기관 요원들이 댓글 공작이나 하고, 북한과 관련해 소설 같은 이야기를 흘리는 언론 플레이 공작이나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해외 및 북한 파트와 국내 파트를 분리하는 것을 포함한 구조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은 분단돼 있다. 안보 위기가 상존한다. 국정원이 올바르게 서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를 성취한 우리는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눈앞에 뒀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정보기관의 정확한 정보 수집과 분석 및 전략 수립은 국가 생존과 관련이 있다. 다양한 비밀공작 또한 국가 생존의 밑바탕이 되는 필수 사안이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정부의 다른 부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인적 자원을 가졌으며 막대한 예산을 쓴다. 국가 안보와 통일 달성의 핵심 축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국정원의 조직, 인원은 국가 기밀이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국정원의 ‘국(局)’ 한 곳이 통일부와 같은 내각의 ‘부(剖)’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원이 많다”고 말했다.
▼ 국정원 본연의 임무는 물밑에서 국가 안보의 버팀목 구실을 하는 것이다. ‘정권의 시녀’ ‘대통령의 사냥개’라는 말을 들어서야….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정보와 관련한 활동은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해외 및 북한 정보 수집 및 공작 능력은 50점 넘게 주기 힘든 수준이다.” “이해관계 따라 정보 왜곡”
▼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국정원은 예전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댓글 공작 등 상식에 어긋나는 일로 정치 논란만 일으킨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국내 정치 개입 문제 등이 발생하는 핵심 원인은 구조적인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국정원장 개인의 성향이나 직원 개개인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그건 작은 문제다. 국정원은 5·16 군사정변 직후 정권안보기구로 출범했다. 21세기 들어서도 국정원은 이 같은 태생적 · 체질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선거를 통해 성향이 다른 정파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상당수 국정원 직원이 정치 바람에 노출됐다. 국정원 직원들은 권력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국가 안보보다 정권 안보를 위한 기능을 중시하는 체질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정치권력 또한 그렇게 인식해왔다. 이렇다보니 정치권력에 줄 대는 행태가 나타났다.”
▼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이 원장의 뜻이나 내부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된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국정원은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의 향방에 대단히 민감했기에 대통령과 원장 등의 의중을 살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정보 가공을 해온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복합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국가가 적확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 민감한 일을 하는 이들은 국정원의 해킹을 우려해 PC가 아닌 외장 하드나 USB에 정보를 저장한다. e메일로도 중요한 자료를 보내지 않는다. 국정원 휴대전화 불법 감청 및 해킹 의혹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상시적으로 감청, 해킹을 당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정보화 시대는 양날의 칼을 가졌다. 편의성 증대와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공존한다. 온라인과 모바일상에서 보안 조치를 취해도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킹 기술이 반드시 나온다. 정보화 시대의 기술을 편의성 확대 차원에서 활용하면서도 비즈니스 차원의 비밀 보호든, 프라이버시 보호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늘 조심하고 면대면(面對面) 만남을 통해 해결하는 게 현실적이다.”
왜 하위직 간부가 책임지나
▼ 7월 18일 국정원 임모 과장이 자살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그의 자살과 관련해 구체적 정보를 아는 게 없다. 일반론 차원에서 답하겠다.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지면 하위직 간부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직원이 불행한 선택을 하곤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조직문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실체적 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정원은 상명하복 풍토가 강한 곳이다. 원장, 차장 등 정무직 간부의 권한이 어떤 조직보다 막강하다. 어떤 조직이든 권한과 책임이 비례해야 한다. 책임질 일이 발생하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무직 간부가 책임지는 게 도리다. 이런 조직문화가 정착돼야 불행한 선택을 하는 이가 사라질 것이며, 직원들이 국가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신명을 다해 일할 것이다.”
▼ 왜 개인이 책임지는가.
“조직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책임 또한 정상적으로 묻지 못하게 된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못이나 책임을 인정하면 비정상적 운영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되면서 종국에는 대통령 책임으로까지 번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개별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할 소지가 커진다.”
▼ 국정원장을 지낸 이들의 말로가 대체로 안 좋았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 이후 국정원장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원장직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 활동으로 삼은 이들이다. 정보 관료들의 활동에 얹혀 임기를 보낸 것으로, 뒤탈은 없었으나 국정원의 엄청난 인력과 막대한 예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에 국민 세금을 낭비한 것이다. 다른 부류는 정치적 욕심을 과도하게 앞세운 경우로 교도소에 가는 등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정권안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개인의 출세를 위해 문제를 일으킨 인사로는 김만복(노무현 정부), 원세훈(이명박 정부) 원장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을 근본적 · 구조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국정원장의 불행한 말로는 계속될 것이다. 2013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 책임자 메이어 다간이 방한했을 때 전임자인데도 모사드 직원들이 에스코트를 해왔다. 부러웠다.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통해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언급했듯 5·16 이후 정권 안보에 주안점을 두고 출범한 게 국정원이다. 해외 활동, 대북공작 활동조차 정권의 안보와 연계해 수행한 경우가 많다. 군사독재 시절의 악명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 이후에도 국정원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일으킨 북풍 사건, 국정원 미림팀의 전방위 불법 감청 사건, 댓글 사건 등 국내 정치 개입이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휴대전화 불법 감청 및 해킹 의혹이 불거졌다. 여전히 정권안보기구로 작동한다는 의심의 근거가 되는 일이 계속 드러난 것이다.”
‘120% 집행 메커니즘’
국정원은 권위주의 정권은 물론이고 김대중 정부 때도 불법 감청을 자행해 임동원, 신건 전 원장이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RCA를 구입한 35개국 97개 정보기관 중 국정원에서만 불법 감청 및 해킹 의혹이 불거진 것은 이런 전력과 국민의 낮은 신뢰 탓이다.
▼ 대법원은 대선 개입과 관련해 원세훈 전 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상고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파기 환송했다.
“사법부의 결정은 실체적 진실을 고려하지만, 법률적으로 인정 가능한 증거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법부의 최종 결정과는 다른 차원에서 댓글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댓글 사건의 본질은 앞서 지적한 국정원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됐다. 정권안보기관적(的) 전통과 체질, 철저한 상명하복적 문화는 대통령과 원장이 어떤 주문을 강력하게 하면, 예컨대 ‘종북세력을 척결하라’고 권력자가 명령하면 100% 수행을 넘어 120%를 집행하는 메커니즘이 작동된다.
원세훈 전 원장이 대선 개입 차원에서 댓글과 관련한 지시를 했을 소지는 거의 없다고 본다. ‘종북세력을 척결하라’는 지시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판단한다. 그렇더라도 정보기관 요원들이 댓글 공작이나 하고, 북한과 관련해 소설 같은 이야기를 흘리는 언론 플레이 공작이나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탈북자 출신 공무원 유우성 씨가 실제로 간첩인지 아닌지는 논외로 치자. 국정원이 간첩 증거를 조작했다.
“남재준 원장 시절 국정원은 간첩과 종북세력 색출, 북한 붕괴공작을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국정원의 안보 및 공작 활동은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 등 변화된 시대적 조건과 북한과 중국의 전략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우성 사건은 간첩 행위 의혹이 있더라도 그것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법률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 당국이 비협조할 경우 심각한 역풍을 맞는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변화된 시대 환경에 맞게 좀 더 똑똑한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 정보당국에서 일한 어느 인사는 “과거에는 사생활을 포함해 전방위로 모든 것을 감청했는데, 현재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고위 장성과 관료가 잇따라 비리에 연루되는 것은 정보기관이 제 임무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더라.
“세계는 사이버 전쟁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미국 연방인사관리처(OPM) 전산시스템이 중국 측으로 추정되는 이들에 의해 해킹돼 공무원 2000만 명의 신상정보가 유출됐다.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도 수시로 발생한다. 북한의 해킹 대상은 대부분 국익 및 안보와 깊이 관련된 곳이다. 국가 차원에서 구체적인 사이버 전쟁 전략을 수립, 실행하는 게 절실하다.
또한 국가안보 업무를 행하는 인력에 대한 상시 감찰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다수 국민도 정권 안보가 아닌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과 관련한 필요악은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다. 다만 독재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와는 달리 민주국가에서는 사이버 전쟁 또한 법에 의거해 수행해야 한다. 사이버 전쟁 시대에 부응하는 법률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北 사이버전 역량 위협적”
통신비밀보호법은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지만 통신사에 감청 설비를 설치할 법적 근거가 없다. 감청의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서다. △휴대전화에 대한 합법적 감청 △오·남용에 대한 철저한 감독 △불법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 가는 게 순리겠으나 그러려면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 국정원은 정보기관과 관련한 정치적 의혹이 발생할 때마다 북한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북한의 해킹부대와 도·감청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2001년, 2002년 남북통신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북한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힌 게 통신 네트워크에 감청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정보기술(IT) 분야를 육성하면서 해커부대 양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평양을 함께 방문한 IT 전문가는 ‘북한 인력의 기초수학 실력이 매우 탄탄하다. 한국보다 알고리즘 개발 등에 장점이 있다. 북한 특성상 해커들이 집단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파괴력이 대단히 크다’고 평가했다. 북한이나 중국은 국가기관이 수행하는 감청, 해킹 등에 법률적 제약이 거의 없다. 한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보다 사이버 전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진 것이다.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균형 있게 실현하려면 훨씬 스마트한 전략과 대응이 요구된다.”
▼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영관급 해군장교가 중국에 포섭돼 군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최근 군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형법상 간첩 행위의 대상을 ‘적국’으로만 한정해놓아 북한이 아닌 중국 등 제3국에 국가기밀을 누출한 경우 간첩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을 상대로 공작을 벌이는 국가는 북한뿐이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다. 국방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와 관련된 군사 기밀이 유출된 사실을 감추려 했다. 구속된 해군장교에게 간첩죄를 적용하는 것에도 소극적이었다.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 행위 관련 규정이 개정될 필요가 있으나 국가 안보의 핵심인 국방부와 국방부 수장이 군사 기밀을 중국 측에 팔아먹은 명백한 간첩 행위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북한과 종북세력에는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면서 외세에 기밀을 팔아먹은 행위를 엄중히 처벌하지 못한다면 국가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한국 정보기관은 북한을 상대하는 것을 넘어 중국, 일본 정보기관과 경쟁해야 한다.”
▼ 미국 국가안보국(NSA) 전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의 전방위적 감시 행태를 폭로한 후 미국 정치권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과 한국 정치권이 민간인 해킹 의혹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커 보인다.
“스노든이 NSA의 행위를 폭로하면서 세계적으로 파장이 일었다. 오바마 정부는 6개월에 걸쳐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 및 프라이버시 문제를 어떻게 균형 잡힌 형태로 풀어낼지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NSA 개혁안을 발표했다. 공화당, 민주당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이 큰 이견 없이 개혁안을 수용했다.
한국의 상황을 보자. 국정원은 개인의 자유 침해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아랑곳없이 무조건 믿어달라고만 한다. 야당은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라는 명칭에서 확인되듯 국가 안보에 대한 고려가 빈약한 상태에서 개인의 자유,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의혹을 최대한 부풀리느라 바쁘다.
오바마의 NSA 개혁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관련해 NSA가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역설하면서도 개인의 자유,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밝히고, 이 같은 우려를 수용하면서 백악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이 옛 소련이나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와 다른 미국 체제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정략적 정쟁을 넘어선 구체적 처방과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6월 2일 미국 의회는 NSA의 불특정 다수 개인에 대한 무차별 통신정보 수집을 불허하는 ‘미국 자유법(USA Freedom Act)’을 통과시켰다. 자유법은 NSA 사찰 활동의 근거가 됐던 ‘애국법(Patriot Act)’의 대체 법안이다. 2013년 6월 스노든의 NSA 무차별 사찰 폭로 이후 2년 만에 법적 정비를 마친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이 국정원 민간인 해킹 의혹과 관련해 꾸린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봤나.
“두 갈래로 지적하고 싶다. 첫째, 현재의 야당은 국가 안보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해킹 사태와 관련해서도 국가 안보와 사이버 전쟁 대비 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분을 지적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과잉 행동은 신뢰를 떨어뜨린다. 국정원이 정권안보기구 행태를 표출했다고 해서 활동 대부분을 불법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권안보기관으로서의 병폐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집어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야당의 임무다.”
▼ 국정원이 정권안보기관 행태를 보이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 탓이라고 앞서 답했다. 구조적 문제는 구조를 바꿔야 해결되지 않나.
“그렇다. 국가안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해외 및 북한 파트와 국내 파트를 분리하는 것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국정원·검찰·정치권 상생案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안보기관 및 사정기관의 선진화와 발전적 재정립이 가능하려면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정권안보기구로서의 성격이 강한 국정원뿐 아니라 검찰 또한 과도한 권력집중 및 정치화의 병폐를 갖고 있다. 정치권력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자유롭게끔 해외 및 북한을 담당하는 국가정보기관과 국가중앙수사기관으로 안보·사정기관을 재정립해야 한다.
국정원의 국내 분야는 경찰의 수사 기능과 합쳐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비슷한 형태의 중앙수사국(KFBI)으로 통합하는 게 옳다. 경찰은 치안 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고 수사 기능만 분리해 KFBI에 합류한다. 검찰은 수사 기능을 KFBI에 넘기고 미국식 공소유지 전담기구로 재편한다. 지방자치단체에 이관된 경찰 기능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방식으로 안보·사정기관을 재정립하면 국정원은 해외 및 북한을 담당하는 독립 정보기구가 된다. 국내 정보수집과 수사를 하는 KFBI는 미국처럼 법무부 장관의 지휘와 의회의 감시를 받게 한다. 이렇게 재정립하면 안보기관, 사정기관이 대통령 개인의 정치기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국가정보기관(해외 및 북한 담당)은 국내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조건에서 해외 및 북한 관련 정보 수집과 분석 및 전략 수립, 공작업무에 전념하게 돼 국가 안보와 통일을 위한 핵심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다.”
▼ 국정원과 검찰이 권력을 내놓는 개혁에 동의하겠나. 대통령도 대선 후보 때는 국정원, 검찰 개혁을 외치다 집권하면 생각이 바뀌게 마련이다.
“국가안보기관과 사정기관의 재정립안은 국정원과 검찰, 정치권 3자 모두 상생할 방안이다. 특정 기관에 타격을 주는 게 아니다. 국정원 국내 파트와 해외 및 북한 파트의 분리는 정치 개입 논란을 없애고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정권안보기관이 아닌 명실상부한 국가안보기관으로 거듭날 기회다. 검찰도 과도한 정치권력화 탓에 주기적으로 정치적 ·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법률 전문가 집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정치권도 정보기관, 사정기관의 정치적 칼날이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합리적 · 이성적 인식을 한다면 여야 공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미래지향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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