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 핵심인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최서원)씨가 모두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렸던 말 3마리의 뇌물성과 삼성 승계작업 실체가 모두 인정되며 이 부회장의 뇌물제공 총액은 항소심보다 50억원이 늘어 다시 열릴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전합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 상고심에서도 각 징역 25년과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최씨로부터 말 소유권을 갖길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혀 실질적 사용·처분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뇌물로 제공한 게 말들에 관한 액수미상의 사용이익에 불과하다고 보는 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고 일반상식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특수한 사적 친분관계가 없고 승마지원 규모 등에 비춰 직무집행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며 “박 전 대통령 직무집행과 이 부회장 등의 승마지원 사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에선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여원만 뇌물액으로 인정해 그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 2심과 달리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여원도 뇌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정청탁의 내용은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이므로 그에 대한 인식은 확정적일 필요가 없다”며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명확하게 정의돼야 하고 그 인식은 뚜렷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부정한 청탁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없다는 원심 판단은 이 법리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 횡령액은 50억원을 초과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유지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 미만이어야 최저 징역 3년 선고가 가능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어서다.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말 3마리 소유권과 관련 “최씨가 박 전 대통령 권력을 배경으로 승마지원을 받아 삼성 측이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해도 말들 소유권이나 실질적 처분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보긴 증거가 부족하다”는 반대의견을 냈으나 소수에 그쳤다.
이들 대법관 3명은 영재센터 지원 관련 부정한 청탁 인정 여부에 대해서도 “사후적·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일부 확인된다는 사정만으로는 승계작업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독일 법인 코어스포츠에 삼성이 용역비를 송금한 것과 관련해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죄는 원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선 1·2심 선고가 공직자에게 적용된 특가법상 뇌물 혐의는 다른 혐의와 분리 선고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규정을 위반했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뇌물죄는 판결 확정 뒤 박 전 대통령의 피선거권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대법원이 박 전 대통령 사건을 파기환송할 경우 다시 열릴 2심에서 양형이 분리되면 여러 혐의를 한데 뭉쳐 하나로 선고하는 경합범보다 전체 형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재판부는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렸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상 대화내용 부분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는 최씨에 대해선 삼성그룹에 대한 영재센터 지원 요구,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납품계약 체결 및 광고발주 요구 등이 강요죄가 성립할 정도의 협박은 아니라고 판단해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에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최씨의 경우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이 파기환송되긴 했지만 형량에 큰 변화가 있진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박정화·민유숙·김선수 대법관은 영재센터 지원 요구 등에 관해선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했으나, 현대차그룹에 대한 납품계약 체결 및 광고발주 요구 등 일부는 강요죄상 협박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별개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 3명은 “이러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 또는 경제수석비서관이 구체적이고 특정한 요구를 하는 건 그 자체로 상대방이 위구심(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며 강요죄의 수단인 ‘묵시적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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