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9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결정이 나온 데 대해 “국민에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2016년 이 부회장이 특검에 첫 기소된 이후부터 대법원 상고심까지 3년간 단 한번도 회사 차원에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던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입장문을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또 다시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해 온전히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실적 악화와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다시 한번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취지다.
이날 오후 2시 53분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 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서 “앞으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부회장도 이날 변호인을 통해 “많은 분들에 대해 실망과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날 입장문은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처음 나온 것이다. 2016년 하반기에 국정농단이 불거지며 이 부회장이 특검에 구속 기소되고 2017년 1심 실형 판결, 2018년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 때도 회사 차원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은 없다.
3년만에 처음 내놓은 입장문에서 삼성은 그간의 논란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점을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대내외적 악재 속에서 위기 상황인 가운데 삼성이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한 것이다.
이는 그간 삼성전자가 각종 검찰 수사와 재판 등으로 정상적 경영활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건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증거인멸 등 수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경영진이 계속해서 수사를 받는 등 리더십이 마비되는 악순환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1년간 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를 겪은 뒤에 삼성전자는 2018년에 메모리 반도체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D램 가격 급락은 올 상반기까지 이어지며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이 올해 7조52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7.5% 감소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등으로 글로벌 리스크까지 겹치고 말았다. 이같은 각종 악재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총수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과 미래 먹거리 발굴, 신사업 및 기술에 대한 적극적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한데, 이날 대법원 판결로 이 부회장은 다시 재판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삼송합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임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된 점과 글로벌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 등도 삼성전자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의 위기에 내몰렸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삼성전자가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안팎에서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그간의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점에서 기여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방법밖엔 선택지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이 재계 1위 대기업 집단으로서 위기 돌파와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나 인재 채용 확대 같은 방향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카드’뿐이라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3년만에 이 부회장 재판 관련해 처음 입장을 낸 것은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회복이 어려울 만큼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돼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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