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4개월간 박근혜 대통령의 양식 조리장을 지낸 한상훈 씨(44)가 “최순실 씨는 내가 청와대 일을 그만둔 올해 6월까지도 ‘문고리 3인방’과 매주 청와대 관저에서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직원들은 최 씨에 대해 ‘대통령 위에 있는 사람’으로 짐작했다”며 “‘최 씨를 몰랐다’고 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모르는 척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최순실, 朴대통령 해외순방 때면 평일에도 靑 찾아 회의” ▼
한상훈 씨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 임기 초반 매주 일요일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다”고 폭로한 데 이어 9일 채널A 기자를 만나 “청와대에서 나오기 직전까지도 최 씨가 매주 청와대를 출입한 것으로 안다”고 다시 밝혔다. 한 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인 2008년 청와대 양식 조리장에 발탁돼 올해 6월 말까지 근무했다. 그는 이어 “매주 일요일이면 (1인분 이상 음식을 마련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덧붙였다. 최 씨가 사실상 박 대통령 임기 내내 국정을 농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한 것이다.
한 씨에 따르면 최 씨는 청와대에 오면 오후 5시부터 2시간가량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과 함께 회의를 진행했다. 같은 시간 박 대통령은 오후 6시부터 관저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한 씨는 “주로 일요일에 왔지만 박 대통령이나 문고리 3인방이 일요일에 일정이 있으면 토요일에 오기도 했다”며 특히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이 있으면 출국 하루 전 평일에도 최 씨와 문고리 3인방이 회의를 했다”고 전했다.
한 씨는 청와대 관저 내실에서 최 씨를 두 차례 정도 마주쳤다고 기억했다. 그는 “내실에 있는 화장실을 가다 마주친 적이 있다. 최 씨는 나를 보자 손에 든 신문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고 전했다. 이후 내실로 통하는 문이 폐쇄됐다고 한다. 그는 또 “이영선 행정관이 주방을 찾아와 조용히 해달라는 뜻으로 주방에서 내실로 들어가는 문에 ‘회의 중’이라는 팻말을 붙였다”며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했다. 최 씨는 회의를 마치면 먼저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이 행정관의 차를 타고 돌아갔다고 한다.
한 씨는 최 씨에 대해 “대통령 위에 있는 사람으로 짐작했다”며 “나뿐만 아니라 청와대 관저 직원들 모두 최 씨의 존재와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 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흥렬 대통령 경호실장의 주장을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씨는 2014년 11월부터 1, 2개월간 최 씨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정윤회 문건 유출’ 파동으로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최 씨가 자신의 존재와 청와대 출입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돼 몸을 사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음 해 1월 검찰이 문건 내용은 허위라고 결론 내리고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자 최 씨는 다시 출입하기 시작했다.
한 씨의 이 같은 증언은 11일 검찰이 “2013년 3월부터 11월까지 최 씨가 청와대 행정관 차를 이용해 절차를 생략하고 10여 차례 청와대를 ‘무단출입’했다”고 최 씨의 출입 횟수를 밝힌 것과는 상당히 차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씨의 증언은 기간이 올해 6월까지로 검찰 발표보다 훨씬 긴 데다, 무단출입 외에 공식적인 출입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보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볼 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식사를 했는지도 똑똑히 증언했다. 한 씨는 “당일 낮 12시와 오후 6시 각각 점심과 저녁식사가 들어갔다. 평소처럼 무게를 재 1인분이 관저로 들어갔고, 대통령 혼자 1시간 동안 다 비웠다”며 “대통령은 평소에도 TV를 보면서 혼자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해외순방 때도 일정이 없으면 호텔에서 혼자 식사한다”고 말했다.
한 씨는 “관저가 아닌 본관에 박 대통령의 식사를 내놓은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명박 정부 때는 많았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거의 없다. 대부분 관저에서 혼자 식사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주방에 온 적은 딱 한 번 있다”며 “작년 정도에 대식당에서 20명가량 참석한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박 대통령이 주방을 처음 방문해 ‘음식이 너무 좋았다. 수고했다’고 격려했다”고 전했다.
한 씨는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식사 외에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초기 대처를 잘 못한 것 같다고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출퇴근이 정확한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 등의 일정이 없을 때는 평일이건, 일요일이건 거의 관저에 있었다. 세월호 그날도 관저에 있었기 때문에…”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씨는 “청와대 직원은 근무 마지막 날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나는)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며 “‘박 대통령이 머리와 메이크업을 못 했다. 수고했다는 말만 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에 비춰 보면 박 대통령은 머리 등을 손질하지 않으면 관저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면보고를 꺼리고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해 ‘관저 대통령’이란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 씨는 “광화문에 나갔다가 수백만 명의 시민이 추운 날 촛불집회를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채널A에 밝혔다. 자신이 3년 4개월 동안 모신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아야 나도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내가 대통령을 모셨다’고 할 텐데 요즘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밖에서 활동하다 보면 ‘저런 분을 위해 일했느냐’는 지탄도 많이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인터뷰 이후에는 전화기를 끄고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음식점 문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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