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원로들 “촛불 의존하는 정치 멈추고 질서있는 명예혁명 이끌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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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가결 이후/원로에게 길을 묻다]정치권을 향한 제언

국가 원로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위기의 대한민국호를 두고 “촛불에 의존하는 정치가 아닌 촛불을 극복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는 11일 김황식 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왼쪽부터)와 긴급 방담을 갖고 나라를 위한 제언을 들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에 응한 원로들의 
뒤편으로 청와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국가 원로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위기의 대한민국호를 두고 “촛불에 의존하는 정치가 아닌 촛불을 극복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는 11일 김황식 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왼쪽부터)와 긴급 방담을 갖고 나라를 위한 제언을 들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에 응한 원로들의 뒤편으로 청와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두 달 가까이 타오르고 있는 ‘촛불 민심’을 국가 원로들도 엄중하게 받아들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 응집해 있다는 것이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과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대한민국은 수십 년간 쌓인 적폐를 청산해야 할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등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인식과 판단, 전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이번에야말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열띤 논의 속에 좌담회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 “혁명의 마그마 끓고 있어”

 ▽김진현=올해 1월 초 혁명의 마그마가 불타고 있다고 썼는데, 촛불 전에 혁명의 마그마가 돼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박정희 스타일의 체제를 제거했어야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확실히 (과거 체제를) 청산했어야 했다.

 ▽허영=국회는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 촛불의 원인은 대통령이지만 촛불을 키운 건 국회다. (국정 혼란 상황에서) 제때 대응 안 하고 말을 바꾸며 혼란을 키우니 국민은 짜증이 났다. 나중에는 촛불이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로 향했다고 봐야 한다.

 ▽김황식=
우리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뤘다고 자랑하지만 진정한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를 보여 (국민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 법치주의 파괴 현상에 분노한 것이다.

 ▽김형오=
국민이 왜 전국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나.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압박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이 복합적으로 맞물렸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다.

○ “시민이 끌고 정치권이 뒤따라”

 ▽김형오=정치권이 (여론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시민이 끌고 정치권이 뒤따랐다. 표에 굶주린 정치권으로선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시기보다 리더십이 부재했다. 대통령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 리더십도 없었다. 당장 대권에는 눈을 밝히지만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김진현=촛불을 녹아내는, 촛불을 수용하는, 촛불을 승화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촛불에 의존하기만 했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면 명예혁명으로 갈 것이고, 끊을 수 없다면 파국으로 갈 것이다. 야당에 유리하다, 여당에 불리하다가 아니라 ‘혁명의 마그마’를 질서 있는 명예혁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가 과제다. 1960년 4·19혁명 이후 1년여 만에 5·16군사정변이 일어났다. 1987년 6월 혁명은 누구한테 바쳤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싸우느라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과연 정치인이 촛불 민심을 명예혁명으로 이끌 수 있을지 아직은 물음표다.

 ▽허영=
진짜 민심은 침묵하는 다수다. 촛불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 민심을 대변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본다. 선거를 하면 침묵하는 다수 의사가 표로 나타난다. 그러니 여론조사가 늘 틀리는 것이다. 언론도 침묵하는 국민 의사를 살펴봐야 한다.

 ▽김황식=다이아몬드 원석을 캐다가 정치권에 가져오면 다 다듬고 가공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정치권의 몫인데, 그저 여론이 하자는 대로 쫓아가는 정치는 지양해야 한다.

○ “촛불 민심 담은 제도적 장치 논의해야”

 ▽허영=탄핵안이 가결된 뒤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를 믿고 기다리자, 생업에 종사하자’고 호소할 줄 알았는데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어겼다며 박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국회가 선동에 앞장선다면 역시 탄핵감이다. 광장 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해야지, 직접 광장에 뛰어 나가려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

 ▽김형오=정치권이 국민 여론을 담아내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정책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정치권이 둘 다 할 생각이 별로 없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오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치권이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

 ▽김황식=
박근혜 정부의 여러 가지 문제점 중 사회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게 가장 크다. 세대나 계층별로 통합하는 노력보다 자기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 밀고 가다 보니 소외된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진현=우리나라는 근대화에 성공했지만 근대화의 신화와 기적에 갇혀 있다. 이제 ‘박정희 체제’도, ‘1987년 체제’도 막다른 골목에 있다. 촛불이 상징하는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려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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