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어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 농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을 통해 이권을 추구한 적이 없다”며 “미르재단 등 어디를 통해서도 한 푼도 받은 게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해서는 “연설문 표현을 고친 적은 있지만 기밀이 담긴 문건은 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 씨에게 넘어간 문건 180여 개 가운데 47개가 기밀문건이다. 이것만 골라서 보지 않았다는 말에 헌재 재판관들이 수긍할지 모르겠다.
지난해 11월 수감된 최 씨가 공개 장소에서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최 씨는 자신의 비리 혐의는 “모른다”, “아니다”, “기억 안 난다”, “답변 못 한다”, “증언 거부하겠다”로 일관했다. 가끔 “유도성 질문 마라”라며 발끈하는가 하면 세월호 사건 당일 기억에 대해선 “어제 오늘도 기억 못 한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형량을 걱정해야 하는 법원 재판과 달리 헌재에서는 뻣뻣하게 나온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40분이나 검토하고 서명한 피의자 신문조서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박 대통령과 똑같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4일 제2차 대국민 사과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최 씨가 이권을 챙기고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적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계의 담장’을 낮추는 바람에 최 씨의 이런 비리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사과했지만 최 씨는 이날 “내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다는 말이냐”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 씨는 “미르 및 K스포츠재단은 각각 차은택 및 고영태 씨가 만든 것”으로 “이들을 약간 도왔을 뿐 설립과 운영엔 간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책임을 차 씨, 고 씨에게 떠넘긴 셈이다. 박 대통령은 최 씨에게, 최 씨는 차 씨와 고 씨에게, 차 씨와 고 씨는 다시 최 씨에게 서로 책임을 핑퐁 게임하듯 떠넘기는 형국이다.
백보를 양보해 최 씨가 추구한 이권과 국정 개입 등이 박 대통령 측의 주장대로 국정의 1%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국회는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중대한 헌법 위배 행위로 보고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박 대통령도 인정한 ‘특정 개인의 위법 행위’에 대해 최 씨가 헌재에서 부인한 만큼 이제는 대통령이 헌재에 나와 직접 소명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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