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실력이야.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말이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촛불집회의 정서 저간에 ‘수저계급론’이나 ‘헬조선’ ‘n포 세대’ 등으로 요약되는 청년 세대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은 낯익다.
‘촛불 이후’ 청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청년세대를 인터뷰하며 연구해 온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57)를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촛불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이 없는 주말과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몰아서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있어요. 호프집, 예식장, 빵집 같은 곳에서 8∼12시간씩 일합니다. 남학생은 공사 현장에서, 여학생은 공장에서 생산직 미숙련 노동자로 일하기도 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은 촛불집회 참여는 꿈도 못 꾸는 거지요. 이게 현실입니다.”
신 교수는 청년들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층은 중장년층에 비해 정치에 무관심해 선거에서 표의 영향력이 작고, 이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게 신 교수의 말이다. 실제 청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주고받으며 잘 알고 있지만, 기성 정치를 불신하고 거기서 희망을 갖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부정축재자 재산을 몰수해 사회에 환원하자’는 주장을 하는 군소정당에 가입해 활동 중인 학생도 만났다”며 “학생은 기성 정당에는 공감하지 못했고 ‘공정’을 강조하는 그 정당의 유인물을 보고 취지에 공감해 가입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기성 정치권이다. 신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철에만 청년 세대를 이용할 뿐 실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정치적 대표자로 성장할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정치 세력이 암암리에 허위 정보를 올리는 등 구성원들에게 정치적인 싸움을 건다”며 “반대하는 구성원이 나가면 특정 세력에 점령돼 ‘××빠’의 공간이 돼 버린다”고 했다. 표를 염두에 둔 접근이 아니라 청년들의 자율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쓴소리다.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차기 정부가 청년을 위한 부처를 설치하는 등 청년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의 삶과 직결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 2015년까지 청년은 한 명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기존의 청년 고용 관련 위원회와 협의회는 회의가 몇 번 열리지도 않는 등 유명무실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청년을 적극 포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 내부에도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문제를 겪고 있어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의 실직이나 가정의 해체를 겪으며 자란 청년들이 많습니다. 복지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적 보호망인 가족마저 무너진 것이죠. 중간층도 한순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괜찮은 직장에 취업한 청년들이 기업의 병영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도 합니다.”
신 교수는 청년들이 졸업 뒤 직장을 가지고 독립하는, 지금은 무너져가는 생애 과정의 ‘사이클’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대안은 중소기업 육성이다. 몇 해 전 연구차 스웨덴과 덴마크를 다녀왔다는 그는 “두 나라 모두 세계적인 복지국가지만 경제가 대기업 중심인 스웨덴은 청년 실업률이 비교적 높은 반면 종업원 5인 이하 기업이 전체의 90%를 넘는 덴마크는 낮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공공 영역과 대기업의 고용 확대를 말하지만 이로써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연구개발(R&D) 예산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 지원되는 등 극단적인 대기업 우선 정책 대신 중소기업을 육성해 ‘강소(强小·작지만 강한) 기업’이 많이 나오면 청년들이 취업할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금 청년들의 분노는 불평등보다도 불공정에서 나온다”며 “이들이 직장을 갖고, 결혼해 아이를 낳도록 돕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여 년 동안 가족·젠더(gender)·노동사회학을 연구해 온 중견 사회학자다. 한국여성연구소 부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동위원회 연구위원, 상지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다양한 집단을 심층 인터뷰하는 질적 연구를 주로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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