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의 오늘과 내일]朴 대통령이 사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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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오전 10시경. 대중사우나 탕에서 나왔는데 TV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빛바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에게 변고가 생겼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 방송이었다. ‘내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65일 전 본보 2009년 3월 19일자 1면 톱기사의 제목은 ‘노 전 대통령, 박연차에 50억 받은 정황’이었다. 법조팀이 쓴 기사였고, 나는 법조팀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대검 중앙수사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중단됐다. 그때까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21명. 당시 수사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를 최근 만났다. “박연차가 돈을 줬다고 진술한 정치인, 관료가 엄청나게 많았다. 수사가 계속됐다면 100명 넘게 구속됐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여파로 같은 해 6월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7월 이인규 중수부장이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사건 주임검사로서 노 전 대통령을 대검 청사에서 대면조사 한 중수부 중수1과장 우병우는 남았다. 그는 검사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정부 첫해 두 차례 연이어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탈락했다. 그제야 사표를 냈다. 그는 한을 품었다. 기자들과 사석에서 만나 불만을 터뜨렸다. “○○○, ○○○ 같은 놈들은 검사장 시키면서 나를 빼놓는 게 말이 되나.”

절치부심한 그는 1년 뒤 검찰을 관장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들어갔다. 민정비서관이 됐고,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올라섰다. 한이 풀렸을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이 터졌다. 2017년 2월 20일 우병우는 국정 농단을 묵인하고 은폐한 혐의로 구속될지 모를 상황에 처했다. 만약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검사장 욕심을 죽이고 검찰을 훌훌 떠났다면 지금과 다른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혐의를 부인하는 말을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과 ‘고통받는 여러 사람’의 삶을 맞바꿨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전 대표, ‘노무현의 적자’ 안희정 지사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구속됐다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가 지지율 1, 2위의 대선 후보가 됐을까. 두 후보가 경쟁적으로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며 노 전 대통령을 살려 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죽음’, 탄핵을 거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을 기대한다. 하지만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론은 별로 다르지 않다.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만 죽는 게 아니다. ‘박근혜의 친구’, ‘박근혜의 적자’까지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탄핵이 기각돼도 등 돌린 국민 다수가 다시 돌아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틀대는 ‘좀비 정권’의 수장이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마저도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9개월 시한부다. 그리고 2개월 뒤 퇴임하면 검찰의 강제 수사에 직면할 것이다.

살 수 있는 길은 있다. 스스로 ‘정치적 죽음’을 택하면 된다. 하야(下野)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면 강제 수사를 당해도 자의로 권좌에서 내려온 권위로 법의 선처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헌재 결정으로 더 적대적이 될 촛불과 태극기 간의 사실상 내전(內戰)을 막을 수 있다. 많은 국민이 박 대통령의 이 결단만큼은 존중하고 기억할 것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노무현#우병우#문재인#안희정#박근혜#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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