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말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에 경찰 호루라기 소리까지 더해져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이 열린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의 상황이다. 탄핵 찬반 세력의 고성과 욕설에 각종 시위도구가 동원되면서 말 그대로 난리 통이었다. “물러서라”는 경찰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삿대질을 했다. 일부 시위대는 막아서는 경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등 위협하기도 했다.
○ 아수라장 된 역사의 현장
이른 아침 헌재 주변은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였다.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은 오전 6시. 헌재 주변을 도는 경찰의 수가 부쩍 늘었다. 경찰은 출근하는 헌재 직원들의 신분을 꼼꼼히 확인했다. 오전 7시경 최종 변론 방청권을 받기 위해 시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방청권은 오후 1시부터 선착순으로 배부한다. 대학생 이하림 씨(23)는 “아침 날씨가 춥지만 역사적인 현장이라 꼭 와보고 싶었다”며 “많이 기다리더라도 꼭 재판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 주변은 이내 탄핵 찬반을 외치는 고성으로 채워졌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소속 2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에 ‘탄핵, 일도양단(一刀兩斷)’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었다. 일도양단은 한칼로 쳐서 두 동강이를 낸다는 말로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체 없는 탄핵을 요구한 것이다. 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특검 수사기간 연장 거부를 비판하며 “공범인 황교안도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이들과 약 20m 거리에 있던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빨갱이들이 나라 망친다”며 큰 소리를 쳤다. 분위기가 격해지자 참가자 사이에서 “재판관들 사형하라” “이정미는, 심근경색으로 죽어라” 등 별의별 말이 쏟아졌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현장을 찾아 “3인의 안위가 어떻게 지켜지냐”면서 “살해압박? 벌벌 떨고 있는 게 무슨 재판관이냐”며 조롱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날 헌재에는 경찰 기동대 4개 중대가 투입됐다. 경찰이 수시로 “헌재 앞 100m 안에서 집회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방송했지만 일부 참가자는 “경찰이 왜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오히려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던 한 남성이 헌재를 향해 기습적으로 돌진하다가 경찰에게 제지당한 일도 있었다.
○ 3·1절 집회 때 충돌 우려
온라인에서도 “기각되면 싹 다 죽이자. 박사모들하고 전쟁 함 치르자” “할배들 사라져야 한다” “내가 좌파라도 니들처럼 개새끼나 버러지처럼은 안 산다” 등 도를 넘은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종 변론기일 이틀 뒤 열리는 3·1절 집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탄핵 찬반 측이 대규모 집회와 함께 청와대 방향으로의 행진을 계획 중이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1일 오전 11시 평소 촛불집회가 열리던 광화문 일부 지역에 집회를 신고한 상태다. 정광용 탄기국 공동대표는 “이날 많게는 700만 명이 모일 것”이라며 “전국 버스 3000대의 좌석이 꽉 찰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영 갈등이 심해져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건 막아야 한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고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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