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나라가 두 동강 날 것 같은,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격동의 북소리가 들려온다. 북소리가 커질수록 내면의 소리도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과연 우리는 이래야 하는가. 도대체 대통령이 뭐길래….
대선 때마다 나라 두 동강
내게 박근혜 대통령은 젊은 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사는, 그래서 무능하지만 때론 짠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 전까지는. 아내를 비롯해 주변의 여성 동료 선후배 등이 성형 시술 의혹 등을 운운할 때도 ‘대통령을 뭘 안다고 그러느냐’고 깔아뭉개기 일쑤였다. 이제 확실히 여자가 여자를 잘 꿰뚫어 본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단지 여성이라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시대는 지났지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봉건의식의 잔재가 나의 뇌리에, 우리 잠재의식에 남아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유독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차가운 머리로, 시쳇말로 ‘쿨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젊은 시절, 내가 찍은 대통령이 당선되지 못한 날 밤새워 통음한 적이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나라가 금방 망할 것 같은 심정으로. 그러나 그 또한 지나갔고,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 탄핵 여부로 나라가 쪼개질 것 같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대통령이란 말은 원래 통령(統領)에서 나왔다. 근대 일본에서 고대 로마나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집정관(Consul)을 ‘통령’으로 번역했다. 영어의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번역하면서 ‘대(大)’자를 붙여 ‘대통령’이란 단어도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상하이임시정부 수반을 ‘대통령’으로 명하면서 굳어졌다. 영어의 프레지던트는 회의나 의식을 주재한다는 ‘preside’에서 나왔다. 서구에는 기업이나 소규모 클럽에도 무수히 많은 프레지던트가 있다. 한국에서는 오직 한 명의 최고권력자가 용어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대통령’으로 불린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굳이 이번 탄핵정국이 아니라 대선 때만 되면 나라가 두 동강 나온 데는 ‘대통령=제왕’으로 동일시하는 전근대적인 대통령관(觀) 탓도 크다고 나는 본다. 선진국민의 대통령관은 우리와 다르다. 대통령은 그들에게 영웅도 구세주도 아니다. 유권자가 보기에 국정 운영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선 때 지지자들은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벌이지만 우리처럼 생사를 걸고, 가정불화도 무릅쓰며, 심지어 칼부림 벌이는 황당한 일은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관’이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가 오고 있다. 과거 정치인은 소년기나 학창시절 지역이나 학교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의도에 그런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도 그렇다. 나 같은 86세대들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4) 말고는 동년배나 연하 대통령을 맞이할 수도 있다.
담담하게 내일을 맞자
‘영웅적 대통령’은 가고 친구나 동료, 선후배 같은 대통령의 시대가 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구시대의 의식을 붙들고 있다. 어쩌면 그런 의식이 아버지 대통령 시대에 익숙한 박 대통령을 과거에 살게 해줬고, 결과적으로 오늘의 비극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격동시켰던 ‘내 안의 대통령’부터 내려놓자. 그리고 담담하게 내일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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