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청와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차분히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만 내놓은 채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운명의 날’을 앞두고 내부적으로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청와대 참모는 외부 약속을 취소한 채 탄핵심판 결정 이후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은 평소대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했다. 탄핵 인용 또는 기각이 경제와 안보 등 국정 전반에 미칠 영향을 보고받고 이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하나씩 점검했다. 수석비서관 회의 이후 핵심 참모들은 박 대통령의 관저를 찾아 여론 동향 등을 보고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할 뿐 탄핵심판과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靑, 탄핵 인용·기각 모두 대비하느라 분주
그동안 청와대는 탄핵 인용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꺼려 왔다. 이날도 대부분의 청와대 참모들은 “헌재 재판관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며 기각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여권 관계자는 “어떤 참모도 박 대통령 앞에서 탄핵 인용을 거론할 수 없는 것 같다”며 “청와대 밖 분위기와는 온도 차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는 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동으로 쓰일 건물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도 실무적으로는 탄핵 인용을 대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해 왔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어떤 상황에서든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것이 참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먼저 홍보수석실을 중심으로 인용과 기각에 각각 대비해 두 가지 버전의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탄핵 기각 이튿날인 2004년 5월 15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측근 비리를 거듭 사과하며 국정 운영 방향을 밝혔다. 박 대통령도 탄핵이 기각될 경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국민 통합’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호실 직원들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을 점검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반면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면 박 대통령은 곧바로 파면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돌아갈 방침이지만 사저를 정비하는 며칠 동안은 임시 거처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동 사저가 4년 동안 비어 있었는데도 걸레질 한 번 한 적이 없다”며 “탄핵 인용을 가정해 미리 가서 청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퇴거 시점이나 퇴거 이후 구체적인 동선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하야를 했던 윤보선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등 전례를 보면 청와대에서 하루, 이틀 머문 경우도 있다”며 “10일 탄핵 결정 상황을 보고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까지도 정치권 일각에선 탄핵심판 결정 전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설이 돌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헌재 결정을 미리 알고 있다면 검토라도 할 수 있겠지만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하야 카드’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 청와대서 2km 떨어진 헌법재판소도 ‘긴장’
이날 헌재 주변은 탄핵 찬반 집회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헌재 내부는 하루 종일 정적이 흘렀다. 정오 무렵 재판관들은 대부분 헌재 밖으로 나가지 않고 헌재 청사 지하 1층에 있는 재판관 전용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 등 6명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재판관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가량 이어진 7번째 평의에서 사실상 탄핵 찬반 여부를 결론지었다. 최종 표결은 10일 오전 11시 선고 직전 열릴 8번째 평의로 미뤘지만 각 재판관은 탄핵 인용, 기각, 각하 중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을 끝낸 상태에서 결정문 수정 등 정리 작업을 했다. 앞선 평의에서 격론을 벌이거나 주요 쟁점에 대해 설전을 벌였던 것과 달리 이날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평의를 마무리했다.
10일 헌재 심판정에서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볼 수 있는 일반 방청객은 24명이다. 인터넷으로 방청을 신청한 사람은 무려 1만9096명에 달해 경쟁률은 약 800 대 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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