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이란 역사적 결단을 내리는 데 헌법재판관 8명 중 단 한 명도 이의가 없었던 결정적 사유는 ‘국가 지도자의 거짓된 태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진 뒤 허위로 해명하며 내부 단속에 몰두한 점 때문에 그를 파면하지 않고는 위법한 권한남용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고도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에 불응하며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박 전 대통령의 그 같은 태도는 법치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이 스스로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과 형사처벌을 피해 보려고 거짓으로 잘못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몰락을 자초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 “진실성 없어…국민의 신임 배반”
헌재가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하려면 2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탄핵소추 사유로 제시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명백히 어긋나야 하고, 위반의 정도가 파면이 불가피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를 크게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참사 대응) 등 4가지로 정리했다. 헌재는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의 국정 농단을 방조하고 권한을 남용한 잘못에 대해서만 위법성을 인정했다. 탄핵 사유 4개 중 1개만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헌재는 2차 관문인 중대성을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권한남용이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심각한 수준으로 지속된 게 문제라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 씨가 추천한 인물을 고위직으로 임명하고 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을 요구해 최 씨가 이권을 취하도록 도왔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뒤 박 전 대통령의 행태가 재판부의 판단에 쐐기를 박았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해명이 객관적 사실과 달라 진실성이 없고,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지키지 않는 등 신뢰 회복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질타했다.
헌재가 “박 대통령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손실보다 압도적으로 크다”고 본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잇따른 거짓말로 대통령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 “헌법 수호 의지 저버렸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의혹이 확산되던 지난해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갖고 “취임 직후 연설문 표현 등에서 잠시 최 씨 도움을 받았고 청와대 보좌진이 완비된 뒤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이른바 ‘말씀 자료’뿐 아니라 인사 자료와 외교 문건 등 각종 기밀을 지난해 중반까지 최 씨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올해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간담회를 자청해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챙겨준 적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이 최 씨 추천 인사로 채워지고, 최 씨 소유의 광고회사(플레이그라운드)가 대기업 광고를 따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를 동원한 사실이 밝혀지며 이 역시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1월 25일 한 인터넷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농단 사건은) 불순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이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재단 설립 자금을 내도록 요구했지만, 강제모금 의혹이 불거지자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일’이라고 청와대 내에서 말을 맞췄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통령은 이렇게 ‘일방통행식’ 거짓 해명을 반복하며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에 계속 불응했다. 또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완력으로 막아서며 거부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지’를 저버린 것으로 판단했다.
○ “헌법상 성실 의무 위반”…보충의견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는 성실성의 기준이 모호해 파면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으로 파면할 수 없다’는 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적용됐던 법리다.
다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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