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대행, 퇴임 3일전 선고
탄핵심판 시작후 매일 출근, 시민들 “머리 만질 시간도 없이… ”
박한철 퇴임후 38일간 대행
대통령측 막말… 살해 위협도, 남편 관련 가짜뉴스에 시달려
헌법재판소 안팎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10일, 평소보다 1시간가량 빠른 오전 7시 50분경 출근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55·사법연수원 16기)이 청사 현관 앞에 도착한 차에서 내렸다.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뒷머리에 매달린 분홍빛 물체가 취재진의 눈에 들어왔다. 급히 출근하느라 머리 뒤쪽 헤어 롤 2개를 떼어내는 걸 깜빡한 것이다.
이 모습을 다룬 기사에 일부 누리꾼은 “바빠서 머리 만질 시간도 없는 재판관이 ‘올림머리’를 즐겨 한 대통령을 심판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헤어 롤 2개의 둥근 모양은 탄핵 ‘인용’의 ‘ㅇ’ 2개를 의미한다”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91일간 탄핵심판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한 헌재 관계자는 “그동안 얼마나 바쁘고 힘드셨을까 싶어 눈물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 ‘헤어 롤’ 2개 매단 채 출근
이 권한대행이 오전 11시 법복 차림으로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온 국민이 숨죽여 이 권한대행의 입을 바라본 21분 동안, 그는 선고 요지를 침착하게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재판관 임기 6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파면 결정 주문을 낭독한 이 권한대행은 박한철 전 소장(64·13기)이 퇴임한 1월 31일 이후 그의 빈자리를 38일 동안 대신했다.
탄핵 심판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9일부터 이 권한대행은 개인 약속이나 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재판 업무에만 매달렸다. 주말을 포함해 하루도 빠짐없이 헌재에 나와 기록을 검토하고 정리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격무였지만, 이 권한대행은 함께 일하는 헌재 관계자들 앞에서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72)가 심판정에서 막말을 쏟아내자 이 권한대행은 심리 내내 뒷목을 움켜잡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 권한대행 남편 신혁승 숙명여대 교수는 통합진보당원’이라는 ‘가짜 뉴스’가 돌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살해 위협에도 이 권한대행은 꿋꿋하게 사무실에 매일 나와 기록을 검토하고 결정문을 가다듬었다.
○ ‘겸손한 리더십’ 정평
이 권한대행은 2011년 3월 만 49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헌재 재판관이 됐다.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비(非)서울대 출신, 여성 재판관을 임명해 헌재 재판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존중해 이 권한대행을 지명했다. 13일 퇴임하는 이 권한대행은 지금도 8인 재판관 중에 가장 나이가 적다.
울산 변두리 농촌에서 6남매의 막내딸로 나고 자란 이 권한대행은 고려대 출신 첫 여성 사법시험 합격자로 유명하다. 이 권한대행은 아버지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줄 수 없다”며 딸의 서울 유학을 반대했지만 고려대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아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법조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이 권한대행은 헌재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도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 핵심을 추리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또 항상 자신의 사무실에 보고를 하러 온 연구관들을 방문 앞까지 나가 배웅한다.
이 권한대행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2011년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권한대행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고 후배 법조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깊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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