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머리가 희끗한 한 중년 남성이 법정에 들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을 향해 큰 소리로 경례 구호를 외친 뒤 홀로 목례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김세윤 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5기)는 “소리치신 분, 일어나실까요”라며 문제의 남성을 일으켜 세웠다. 김 부장판사는 “더 이상 방청을 허락할 수 없다”며 퇴정 명령을 내렸다. 자신의 성을 주 씨라고 밝힌 이 남성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더 이상 방청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주 씨는 재판장의 퇴정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 만세다. 애국국민 만세다. 민족의 혼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다가 법정 경위들에게 이끌려 법정을 떠났다.
앞선 재판에서도 한 여성 방청객이 몰래 재판 내용을 녹음하다가 적발돼 퇴정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지지자가 돌발행동으로 법정 출입 자체를 금지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 씨를 퇴정시킨 뒤 김 부장판사는 “방청객이 큰 소리를 내면 심리에 많은 방해가 된다. 그런 경우 입정이 영원히 금지되고 구치소 감치에 처해질 수 있다”며 “이런 조치는 피고인과 방청객의 안전 보호와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부득이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이처럼 단호한 제재를 한 이유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법정 소란 행위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첫 공판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설 때나 퇴정할 때는, 10명 남짓한 방청객이 자리에서 일어서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등 구호를 외쳤다. 법정 경위들이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주의를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부 방청객은 피고인석에 앉은 박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거나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19일 재판에서는 이들의 소란행위가 극에 달했다. 이날 재판 시작 직전, 한 여성 방청객은 법원 측에 “왜 판사가 들어올 때는 일어나라고 하면서, 대통령님이 들어올 때는 못 일어나게 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오전 재판이 끝난 뒤 퇴정하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응원 구호를 외치던 지지자들은, 법정 경위가 이를 제지하자 “재판도 끝났는데 뭐가 문제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일부 방청객은 법정 경위에게 “얄밉게 생겼다”며 시비를 걸고 10분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이런 상황은 박 전 대통령 재판 방청객 가운데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비율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매번 추첨을 통해 일반인에게 주어지는 방청권은 68장이다. 첫 공판 때 525명이던 응모자 수는 최근에는 29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법원 관계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법정을 찾는 사람은 줄어든 반면,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꾸준히 방청권 응모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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