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회의서 허용 여부 논의 “국민 신뢰 높여” vs “피고 인권침해”
중계 범위-요건 등 이견 못좁혀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사건 등 국민적 관심이 큰 주요 하급심 재판에서 TV 생중계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법원은 25일 다시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20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 대법관 회의를 열어 1, 2심 주요 재판의 녹음, 녹화, 중계를 금지한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 개정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회의에서는 재판 당사자의 인권 문제, 중계 허용 범위 등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고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이날 회의에서 생중계 허용을 반대하는 측은 하급심 재판 생중계가 형사재판 피고인의 사생활 비밀 등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1, 2심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됐더라도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결과가 바뀔 수 있는데, 이 경우 피고인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생중계를 거부할 경우 1, 2심 재판장이 재량으로 생중계를 허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생중계 허용 범위 및 요건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우선 방송 중계를 선고 기일에만 허용할지 또는 최종변론 기일이나 그 이전 단계까지 허용할지가 논란이 됐다. 생중계 허용을 반대하는 쪽은 증인신문이나 증거조사 과정을 방송에 공개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증인이 위축돼 제대로 된 증언을 하기 어렵고, 피고인과 증인의 초상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하급심 재판의 방송 생중계 허용 여부는 대법원뿐만 아니라 일선 법원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공개재판의 원칙상 재판 진행 과정의 일부를 생중계로 온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원의 신뢰를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라며 찬성했다. 반면 또 다른 부장판사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큰 사건에서 생중계를 허용할 경우, 사실상 여론재판이 돼 피고인이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가 앞서 지난달 5∼9일 전국 판사 2900여 명을 대상으로 이 문제를 설문조사했을 때는 전체 응답자 1013명 중 687명(67.8%)이 “재판장 허가에 따라 재판과정 전부나 일부를 중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상당수 지역에서 1, 2심 재판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중계하고 있다. 반면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은 재판 촬영을 원칙적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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