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이 3일 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을 독대했을 때 경영권 승계 청탁을 대가로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정유라 씨(21)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을 약속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 부회장은 변호인 측 신문에 답하며 2014년 9월과 2015년 7월, 2016년 2월 3차례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을 독대했을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밝혔다. 요지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대화가 전혀 없었다는 것. 전날 박영수 특검팀 측 신문에 이어 이날도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 “청탁할 분위기 아니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처음 독대했을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이) 정 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수락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1차 독대에서 정 씨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며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청을 공익적 차원에서 한 것으로 이해했지, 사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 안 했다”고 강조했다. 또 “당시 독대가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져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듣기만 하다 끝났다”고 설명했다.
특검이 공소장에서 본격적인 청탁과 뇌물 요구가 오갔다고 적시한 2, 3차 독대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2차 독대에 대해 이 부회장은 “제가 아버님께 야단맞은 것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는데 여자분한테 그렇게 싫은 소리 들은 게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이 부실하다고 박 전 대통령이 질책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또 3차 독대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분위기가 2차 독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경영권 승계)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특검에서) 검사님이 ‘부회장님은 정말 모르시네요. 시간이 부족하니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거나 잘 모르지만 그랬을 것 같다 등 두 가지 답을 조서에 써줄 테니 변호사와 확인하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특검 조서가 충실한 문답을 거쳐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에 특검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피고인 신문 막바지에는 재판부가 직접 이 부회장에게 질문을 했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전 승마협회장)에게 승마협회 문제를 신경 쓰지 않게 해 달라며 협회를 지원하라는 취지로 말한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재판부가 묻자 이 부회장은 “스포츠 지원을 1년에 천 몇백억 원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조금 더 한다고 문제가 될까 싶었다. 웬만하면 해주는 게 어떻겠느냐. 방법 등은 알아서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또 재판부가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청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묻자 이 부회장은 “저나 회장님(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께서도 그런 건에 대해 일일이 챙기거나 보고받으려 하질 않는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께서 알아서 챙겨주실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 “부정한 청탁 있었다” vs “청탁할 이유 근거 없다”
이 부회장에 대한 신문이 끝난 뒤 특검과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재판 주요 쟁점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검은 “3차례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 승계를,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권한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2차 독대에 대해선 “청와대 ‘안가(安家) 독대’라는 부적절한 방법으로 돈을 요구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의사가 있었음이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은 1차 독대 때 두 사람 사이에 이미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 지원에 대한) 인식 공유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밝혀진 게 없다”며 “어떻게 부정한 청탁이 성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공박했다. 또 “특검은 ‘승계 작업’이라는 실재하지도 않는 가공의 프레임으로 두 사람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고 억지로 주장한다”며 “이 부회장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청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의 피고인 신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날 서울중앙지법 2층에는 오전 6시경부터 방청 행렬이 늘어섰다. 50여 명의 일반 시민과 취재진은 제한된 방청권을 얻기 위해 4시간가량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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