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심 판결, 증거 인정 기준 들쑥날쑥 논란
법조계 “같은 증거에… 이해 안가” “결론 먼저 내놓은 것” 뒷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의 1심 판결에 대해 증거 인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법조계는 재판부가 같은 증거를 놓고 어떤 혐의에서는 ‘믿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가, 또 다른 혐의에서는 유죄 판단의 증거로 삼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과 독대를 하면서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을 했는지 판단하면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업무수첩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종범 수첩’과 대통령비서실이 독대 준비를 하며 작성한 이른바 ‘말씀자료’에 경영권 승계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관련된 대화를 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16억2800만 원을 뇌물이라고 판단할 때는 ‘안종범 수첩’의 내용을 증거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던 2016년 2월 15일자 수첩에 ‘빙상, 승마’가 적혀 있는 점으로 볼 때 독대에서 영재센터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같은 ‘안종범 수첩’ 내용을 두고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얘기는 안 했을 것’, ‘영재센터 청탁은 했을 것’이라고 정반대의 판단을 한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의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 승마 지원을 뇌물로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승마 지원 등 부당한 요구를 하는 데 이용했다는 취지다.
이는 청와대가 지난달 특검에 넘긴 ‘캐비닛 문건’과 앞서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업무수첩에 적힌 ‘삼성 경영권 승계 모니터링’ 메모 등을 증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 재판부는 민정수석실 관계자를 증인으로 불러 문제의 ‘캐비닛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는지 확인했을 뿐, 정작 해당 문건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이는 대통령비서실이 작성한 이 부회장 독대 ‘말씀자료’에 대해 내린 판단과 완전히 다른 잣대다.
이처럼 들쑥날쑥한 증거 인정 기준 때문에 재판부가 결론부터 먼저 내놓은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법조계는 “항소심에서는 증거 채택과 사실관계 인정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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