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 발표 전에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인해 도리어 재화(災禍)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정 농단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제명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제명을 논의하기 위한 최고위원회의는 오전에 열렸다. 홍 대표는 최고위원들의 공개 발언을 자제시켰다. 비공개로 전환된 뒤 최고위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홍문표 사무총장이 “자진탈당 권고 징계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이 열흘 동안의 이의제기 기한인 2일 0시까지 재심 청구를 하지 않아 당헌·당규에 따라 제명 효력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 제명에 반대하던 친박(친박근혜)계 김태흠 최고위원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결정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제명에 부정적이었던 류여해 최고위원은 회의 내내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회의가 끝날 무렵 홍 대표는 “최고위원들의 말씀을 잘 들었고 오늘 중으로 숙고해서 결정을 내리겠다.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이 “숙고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홍 대표와 가까운 이종혁 최고위원이 홍 대표를 옹호하면서 회의장에서는 잠시 고성이 오갔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표결로 해결 방법을 찾으면 안 된다”며 정기국회 이후로 논의를 유보하자는 제안도 했다.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최고위원회의는 각자의 의견을 밝힌 뒤 박 전 대통령 제명을 홍 대표에게 위임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 뒤 홍 대표는 점심 식사도 당사 대표실에서 혼자 해결하며 박 전 대통령 제명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직접 다듬었다. 이때 김 최고위원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탈당했는데 이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과정이 당에서 지워지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세는 기울었다.
오후 6시경 모습을 드러낸 홍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한국당 당적 문제를 정리하고자 한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한국당을 ‘국정 농단 박근혜당’으로 계속 낙인찍어 (문재인 정부가) 한국 보수우파 세력을 모두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제명이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이로써 9월 13일 당 혁신위원회의 권고로 시작된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은 지난달 윤리위원회,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51일 만에 마무리됐다. 홍 대표는 직후 페이스북에 ‘The buck stops here’라고 적었다. 미국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말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은 “한국 정치사의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당원들의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고 반발했다. 최경환 의원은 결정 직후 입장문을 통해 “최고위 의결을 거치지 않은 당헌·당규 위반 행위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친박계는 조직적으로 반발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제명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이미 형성돼 있는 듯했다.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 제명을 끝으로 더 이상의 내전(內戰)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 최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제명할 수 있어 통과도 불투명하다. 홍 대표는 “시간을 두고 정 원내대표와 의논해 보겠다”고만 했다. 두 의원의 거취 문제가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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