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이 “검찰 조사에선 누구에게 지시받았는지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에선 얘기하겠다”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요구했다는 진술을 한 사람은 이 전 원장이 처음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 전 원장을 포함해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 이병기 전 원장의 실질심사가 진행됐다. 비공개로 진행된 영장심사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7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세 사람 모두 착잡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단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이들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40억여 원을 청와대에 상납하도록 지시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공여, 국고손실 등)를 받고 있다. 이병기 전 원장은 국회의원에게 특활비를 전달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세 사람의 심리는 모두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담당 부장판사가 했다.
이 3명은 영장심사에서 “청와대의 요구로 돈을 줬을 뿐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활비를 청와대에 전달해 본 이득이 없기 때문에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검찰은 국가 예산을 용도에 맞지 않게 전용한 것은 중범죄라는 점을 강조하며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변호인들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구속 수사를 호소했다.
남 전 원장은 심사에서 특활비 상납 경위에 대해 “국정원장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중에 누군가가 ‘청와대에 돈을 줘야 한다’고 했지만 누가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청와대에서 우연히 만난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이 돈을 달라고 한 것 같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남 전 원장의 변호인은 “(청와대에서) 먼저 달라고 하니 ‘그 돈이 청와대 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준 것”이라며 “국정원장이 쓸 수 있는 활동비 중에서 그 돈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특활비 예산 중 일부는 청와대 몫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남 전 원장이 고위공직자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남 전 원장은 “40년간 군인으로 살아왔고 군인으로서 자부심이 있다”며 “책임질 게 있으면 당연히 (책임을) 지지만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하게 반문했다고 한다.
이병기 전 원장은 “(특활비 청와대 상납이 법 위반이라는 점을) 몰랐다면 몰랐던 게 죄”라면서 “기본적으로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선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억울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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